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1095년 백수산 불적사를 유람하고 친필로 쓴 ‘백수산불적사유기’. 가로 3.6m, 세로 0.5m. 행서 130자(字)로 구성된 이 작품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성균관대 박물관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의 친필 작품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이 소장했던 소동파 진적(眞跡)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를 18일 개막하는 기획전 ‘파두완벽(坡肚阮癖)’에서 5일간 공개한다”고 밝혔다.


소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 시작 부분. /성균관대 박물관
소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 중간 부분. /성균관대 박물관
소동파의 ‘백수산불적사유기’ 끝부분. /성균관대 박물관

이 작품은 1095년 3월 소동파가 현재 광둥성 후이저우시(惠州市)에 있는 백수산 불적사를 유람하고 쓴 시다. “온천에서 목욕하고 폭포 아래서 바람을 쐰 뒤 중령(中嶺)에 올라 폭포수의 근원을 바라보았다. (중략)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며 산을 구경하다가 유람객들과 얘기도 나누었고···.” 모두 130자(字)로 가로 3.6m, 세로 0.5m 크기다.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 /성균관대 박물관

박물관은 “소동파 작품이 국내에 유입된 경로를 밝혀냈다”고 했다. 원나라 인종이 고려 충숙왕에게 선물했고, 문신 이언충이 공신에 책봉되면서 다시 충숙왕에게서 하사받았다. 이언충 아들 이광기가 윤원무에게 넘기면서 이후 파평 윤씨 가문이 오랫동안 소장해왔다. 김대식 학예실장은 “유희강 선생은 1950년대 후반 파평 윤씨 종손이 미국으로 이민 갈 때 이 작품을 구입했다”며 “당시 서울 안국동의 99칸짜리 기와집을 팔아서 구입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검여의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다.

작품 끝에는 원나라 4대 화가로 꼽히는 황공망(黃公望·1269~1354)과 조맹부의 아들 조옹(趙雍·1289~1369)이 쓴 발문이 달렸다. 황공망은 “화악(華嶽)의 세 봉우리가 우뚝 선 것 같은 글씨”라 했고, 조옹은 “필법이 빼어나면서 굳세어 팔뚝을 운용한 신묘함이 들어있다”고 찬탄했다.

원나라 4대 화가로 꼽히는 황공망, 조맹부의 아들 조옹 등이 쓴 발문. /성균관대 박물관

조환 관장은 “송나라 제일의 문장가이자 명필인 소동파는 영향을 받지 않은 후대 문인이 없을 정도로 시문서화(詩文書畫)의 최고작들을 남겼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며 “지난 2018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수묵화 ‘목석도(木石圖)’가 670억원에 낙찰되며 아시아 크리스티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것만 봐도 소동파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유희강은 1976년 5월 이 작품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김대식 학예실장은 “보도 사흘 뒤 선생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불안한 마음에 아들 집에 보관해둔 터라 화를 면할 수 있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추사 이래 최고의 명필'이라 꼽히는 서예가 검여 유희강. 1968년 뇌출혈로 오른쪽이 마비된 그는 왼손 글씨를 수련해 10개월 만에 오른손 못지 않게 쓸 수 있게 됐다. /성균관대 박물관

이번 전시는 ‘추사 이래 최고의 명필’이라 꼽히는 검여 유희강의 예술 세계를 펼친다.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과 이를 계승한 유희강의 대표작을 두루 만날 수 있다. 유희강은 1968년 57세에 뇌출혈이 일어나 오른쪽 반신 마비가 됐다. 서예가에게 글씨 쓰는 손 마비는 예술가로서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불굴의 의지로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계속해 10개월 만에 오른손 못지않은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 이후 1976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좌수서(左手書)’로 개인전을 4차례나 열었다.

기획전은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18일 오후 6시 다음 카카오 갤러리에서 개막하며, 일반 관람은 18~24일(주말 휴관) 예약제로 실시된다.

검여 유희강의 작품 '완당정게'. /성균관대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