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의 예비군 동원령을 피하기 위해 탈출한 러시아인들이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로 몰려들고 있다고 23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예비군동원령이 내려지자 징집대상 러시아 남성들이 대거 국외로 탈출했다. 사진은 지난 9월 28일 조지아로 넘어가는 러시아 남성들 모습./로이터 뉴스1

WP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고학력 중산층·상류층 상당수가 조지아·카자흐스탄 등을 거쳐 키프로스로 이주하고 있다. 키프로스 내의 러시아인 커뮤니티인 ‘키프로스 IT’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최대 5만명이 키프로스로 이주했으며 이 중 대다수가 러시아의 IT 기술자들”이라고 밝혔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최근 관광 비자를 통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러시아인이 유럽으로 넘어가는 관문을 봉쇄한 것이다. 러시아 이민자가 급증하자 조지아도 비자 제도 변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튀르키예도 러시아인의 이민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비교적 쉬운 이민 절차, 낮은 세금 등으로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 부유층이 즐겨 찾던 키프로스가 러시아인의 마지막 남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부유한 러시아인들이 이주하면서 키프로스의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러시아 학부모가 몰리면서 국제 학교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다. 지난 4월 러시아에서 키프로스로 이주한 게임 업계 종사자 예브게니야 코르네바는 “주택 가격은 두 배로 올랐고, 관광 도시 리마솔에서는 월세 2000유로(약 283만원) 이하로는 아파트를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키프로스에는 러시아인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난민들도 정착하고 있다. 키프로스 내무부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최소 1만6000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키프로스로 이주했다. 수도 니코시아에서는 서방의 대러 제재에 항의하는 친러 시위와 우크라이나인들이 조직한 반전 시위가 함께 열리기도 했다. 현지 언론은 두 나라의 이주민들로 인해 키프로스 내에 묘한 긴장이 감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학교에서는 양국 학생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러軍 동원령 받고… 철조망 사이로 작별 - 23일(현지 시각)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800㎞ 떨어진 도시 카잔에서 군 동원령을 받고 참전하게 된 한 남성이 파병 전 환송 행사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애인과 입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예비군 30만명 동원령을 선포한 이후 수십만 명의 러시아 남성이 키프로스 등 외국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스 연합뉴스

외국인 투자·관광 수입 등을 러시아에 의존해온 키프로스는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에는 찬성하지만, 러시아인의 입국을 막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디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과거 튀르키예의 침략을 받았던 자국의 역사를 언급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표하면서도 “러시아 시민에 대해선 악감정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