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석모(29)씨는 일주일째 에어컨 탓에 영업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지난 11일 에어컨이 고장 나 대리점에 문의했더니 17일 밤에야 수리 기사를 보내줄 수 있다고 해서다. 석씨는 “손님들이 너무 더워해서 홀 영업을 못 하고 있다”면서 “배달과 포장 주문만 받으며 버티는 중”이라고 했다.
이른 폭염으로 곳곳에서 에어컨 AS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별, 제품별로 편차가 있지만 짧게는 일주일에서 최대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수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적잖은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실제 17일 한 대기업 공식 에어컨 서비스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봤더니, 서울 종로구 등은 2주, 인천 남동구 등은 다음 달 11일 수리 신청이 가능하다고 나왔다. 평일에는 문의가 몰려 상담원과 통화하려면 수차례 전화를 걸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요 기업의 경우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정직원인 에어컨 수리 기사들이 종전 여름과 비교해 AS 처리량이 줄었다. 또 예년보다 폭염이 빨리 온 탓에 대기가 길어지고 있다.
광주에 사는 김주환(58)씨는 지난달 28일 혼자 사는 딸의 집에 방문했다가 방이 찜통인 것을 보고 서둘러 중고 에어컨을 구입했다. 하지만 막상 에어컨을 설치해줄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김씨는 에어컨 제조사에 문의하니 설치 기사가 오려면 한 달은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중고 에어컨을 판매하는 업체 등 7곳에 연락해봤는데 바로 설치가 가능하다고 답변한 곳에서는 48만원을 달라고 했다. 김씨는 “20만~30원대에 설치해준다고 한 업체들은 2~3주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며 “이 더위에 몇 주를 기다릴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48만원을 주고 에어컨을 달았다”고 말했다.
삼성·LG 등 주요 에어컨 제조사는 AS 대란의 원인 중 하나로 주 52시간제 도입을 꼽는다. 주요 기업들은 에어컨 AS 기사들을 정직원으로 두고 있는데, 주 52시간을 준수해야 하다 보니 제도 도입 이후 기사들이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도 줄었다는 것이다. 기업들에 따르면, 에어컨 방문 수리는 평균적으로 1건당 1시간이 걸려 주 52시간제 도입 전에는 기사 1명당 하루 12~13건을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8~9건을 처리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원래 한여름 성수기에 에어컨 수리가 지연되기는 했지만 주 52시간제 도입 이전에는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면서 “계약직으로 보조 인력을 채용하고 사무직에서도 가용 인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지만 주문량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폭염이 예년보다 빨리 온 것이 큰 영향을 줬다. 올해 첫 폭염경보는 경북 지역에 지난달 20일 내려져 작년보다 약 20일 빨랐고, 서울에서도 작년보다 16일 빠른 지난 3일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그러다 보니 올해는 에어컨 관련 문의가 더 빠르게 몰렸다. 원래 7월 말쯤 되어야 에어컨 AS 대기자가 많이 생기는데 예년보다 더 빨리 대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주요 기업들은 여름 한 철을 위해 정규직인 수리 기사를 늘리기에는 경영상 부담이 크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AS 담당 직원들이 겨울에는 다른 전자제품도 맡긴 하지만, 겨울은 상대적으로 여름처럼 AS 요청이 많지 않아서 사람을 마냥 늘릴 수는 없다”고 했다.
주요 기업에서 AS를 받기 어려워지자 소비자들은 지역 곳곳의 사설 업체도 많이 찾는다. 이런 곳들은 에어컨 부품을 구하기가 어려워 수리를 하는 곳이 많지 않다. 보통 이사한 집에 에어컨을 옮겨 설치하는 일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런 업체들은 인력난을 겪고 있다. 사설 업체에서 많이 일했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코로나 사태 동안 빠져나가 버렸고, 기존 기사들도 이 시기 다른 일을 찾으러 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자제품 수리 업체를 운영하는 기사 김모(37)씨는 인력사무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거나 구인 사이트에 매일 공고를 올리면서 인력을 구하고 있지만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오래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사람을 구해도 힘들다며 당일에 안 나온다고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며 “성수기인데도 이번 주에만 사람을 못 구해 일을 이틀이나 쉬어야 했다”고 전했다.
AS를 받기도 어려운데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에어컨 이전·설치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도 소비자에겐 부담이다. 개인 수리 업체 기사 장모(46)씨는 “작년에 15m 기준으로 7만원하던 동(銅)으로 된 에어컨 관이 11만원으로 오를 정도로 자재비가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