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럼하우스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겟아웃’ ‘23 아이덴티티’ 같은 히트작을 제작한 미 공포 영화의 명가(名家). 단돈 1만5000달러(2000만원)의 초기 제작비로 무려 2억달러(2700억원)를 벌어들인 ‘파라노말 액티비티’처럼 저예산 고수익 영화들로 유명하다. 이 영화사 창립자이자 대표인 제이슨 블럼(53)이 최근 넷플릭스의 운영 방안에 대해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기고했다. 넷플릭스가 가입자 감소와 주가 폭락의 이중고에 빠지자, 실제 시청 횟수 같은 영업 비밀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작품 제작 단가를 낮추라고 쓴소리를 쏟아낸 것이다. 흔히 ‘개미’에 비유되는 독립 영화 제작사가 세계 최대 온라인 영상 서비스(OTT) 업체라는 ‘공룡’에 훈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는 7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블랙폰’이 바로 블럼하우스의 신작. 미 덴버의 한적한 교외 마을에서 어느 날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춘다. 경찰이 유일하게 확보한 단서는 유괴범이 현장에 남겨 놓은 검은 풍선들뿐. 아이들을 붙잡아 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정체 불명의 범인은 ‘그래버(Grabber)’로 불린다. 그래버에게 납치된 주인공 소년 피니가 눈을 뜨자 지하실 벽면에는 고장 난 검은색 전화기 한 대뿐이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블랙폰’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아들인 조 힐(50)의 동명 소설이 원작. 한국어판 30여 쪽에 불과한 단편에 가학과 피학으로 얼룩진 가족의 전사(前事)를 덧붙여 1시간 43분의 장편 영화로 펼쳐냈다. 연쇄 납치극의 잔혹한 현실과 예지몽(豫知夢)의 환상이 뒤섞인 구조는 아버지 스티븐 킹의 작품과도 묘하게 닮았다. 구체적 상황 묘사와 단문 위주의 글쓰기도 닮은꼴이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감독 스콧 데릭슨이 연출을 맡았다. 해외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건 가면을 쓴 악역(惡役) 이선 호크의 과감한 ‘연기 변신’이었다. ‘비포 선라이즈’의 낭만적 주인공으로 친숙했던 호크는 이번 영화에서 ‘13일의 금요일’을 연상시키는 마스크를 쓰고서 화면 가득히 공포를 불어넣는다.
초자연적 미스터리와 납치극의 장르를 영민하게 이종(異種) 교배한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미덕.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 바운드의 공처럼 다음 장면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효과를 자아낸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 ‘용쟁호투’ 같은 1970년대 영화들을 인용한 장면들도 복고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미 전원 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공포물의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현대적 변용이기도 하다.
제작비 1800만달러(240억원)를 투입한 이 영화도 해외 개봉 이후 1억5000만달러(2100억원)의 수입을 기록했다. 블럼하우스 영화는 초대형 홈런보다는 적시타를 노리고 타석에 들어서는 영리한 타자를 닮았다. 역시 넷플릭스에도 충분히 잔소리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