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을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만큼 줄이겠다는 감축 목표(NDC) 수치를 법령에 명문화한 국가는 EU(유럽연합) 회원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일 대통령직 인수위가 탄소 중립 정책을 개편하겠다고 했지만 현 정부가 법령으로 감축 목표를 못 박으면서 에너지 위기 속에 산업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2030 NDC’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중간 목표로, 파리 기후변화 협정에 참가한 국가가 스스로 정하는 목표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하면서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2018년보다 ‘35% 이상’ 줄이겠다고 했고 지난달 시행령에 40%로 못 박았다.

19일 본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온실가스 통계 사이트 클라이밋 워치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50 탄소 중립 비전을 법제화한 국가는 모두 16국이다. 이 가운데 2030년 감축 목표 수치를 법령에 넣은 곳은 11국인데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독일·스웨덴·프랑스 등 모두 EU 국가다. 일본과 영국·캐나다·뉴질랜드·아이슬란드는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법제화했지만, 2030년 감축 목표량은 법에 명시하지 않았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미국·중국과 러시아 등 대부분 국가는 아무런 법률도 만들지 않았다.

2030 NDC를 법제화한 EU 회원국은 1990년대 온실가스 배출이 정점을 찍고 감소해왔다는 점에서 2018년 정점을 기록한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EU의 2030년 감축 목표는 탄소 배출 정점을 찍은 1990년 대비 55% 수준이다. EU는 이미 1990~2018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5.4% 줄였다. 매년 4% 이상 줄여야 하는 우리와 달리 연간 1% 정도만 감축하면 된다. 송재형 전경련 팀장은 “EU와 달리 배출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40%를 줄이겠다는 건 애초 무리한 목표”라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앞으로 모든 에너지·산업 정책을 펼 때 2030 NDC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며 “앞으로 수년간 에너지 위기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법령에 감축 목표를 명시한 것은 우리 스스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