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알린 T. 제로니머스 지음|방진이 옮김|돌베개|509쪽|3만1000원

질병에 시달리는 이들은 나쁜 유전자를 타고났거나, 방종한 생활 습관의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공공보건학자인 저자는 건강을 해치는 주 원인이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데 30여 년을 바쳤다.

그가 가장 주목한 원인은 ‘불공정’한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 불평등과 차별에 긴 시간 노출될수록 은밀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 부정적인 생리 현상을 일으키고 기대 수명을 줄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건강 마모 현상을 ‘웨더링(weatherting)’이라고 칭한다.

그에 따르면 웨더링은 사회적 차별과 도시 간 빈부 격차의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미국 대도시 흑인은 같은 권역의 백인에 비해 일찍 만성 질환에 시달린다. 반면 ‘힐빌리’ 혹은 ‘화이트 트래시’로 불리는 미국 중서부 백인 빈곤 계층은 대도시 흑인보다 젊은 나이에 건강이 망가지는 비율이 평균을 훌쩍 웃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오랜 기간 누적된 사회적 정체성과 낙인이 때로는 인종·유전적 특징에 상관없이 우리 몸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