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8강전 4경기 중 크로아티아-브라질, 아르헨티나-네덜란드전은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11m 혈투 끝에 희비가 엇갈렸다. 우승 후보 최우선순위에 이름을 올렸던 브라질은 쓴잔을 들었고, 막판까지 무서운 뒷심으로 아르헨티나를 위협했던 네덜란드도 승부차기에선 실수를 연발했다. 모두 첫 번째 키커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그래픽=김현국

◇1번 키커가 넣어야 승리한다

승부차기는 1978년 월드컵부터 도입됐다. 그러나 해당 대회에서는 연장전까지 승부가 갈리지 않은 경기가 나오지 않아 1982년 스페인 대회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월드컵에서 34번의 승부차기가 펼쳐졌는데(11일 현재), 그중 1번 키커가 실패하고도 승리한 경우는 4번뿐이었다. 그래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감독들은 팀에서 가장 결정력이 좋은 선수를 첫 순서에 배치한다. 1번을 맡을 선수를 연장전 종료 직전 경기에 투입하기도 한다. 첫 번째 킥을 누구에게 맡기느냐가 하나의 전술인 셈이다.

카타르에서도 네 차례 승부차기에서 이긴 팀들은 모두 1번 키커가 골을 넣었지만, 패배한 팀들은 첫 번째 키커가 모두 실축했다. 8강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한 네덜란드는 강력한 슈팅 파워를 가진 버질 판데이크(31·리버풀)를 1번으로 내세웠지만,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30·애스턴 빌라) 골키퍼에게 가로막혔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가장 안정적이고 경험 많은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맹)가 처음으로 나와 여유 있게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분위기를 내준 네덜란드는 두 번째로 나선 스테번 베르흐하위스(31·아약스)마저 마르티네스 골키퍼를 넘지 못했고, 결국 4강 문턱에서 탈락했다.

브라질도 첫 번째 키커가 실패하며 흔들렸다. 크로아티아전에서 페널티킥 전담 키커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 대신 ‘신예’ 호드리구(21·레알 마드리드)가 첫 키커로 나섰지만, 도미니크 리바코비치(27·디나모 자그레브) 골키퍼에게 막혔다. 브라질은 네 번째로 나선 마르키뉴스(28·파리 생제르맹)마저 골대를 맞히며 4강행 티켓을 크로아티아에 내줬다. 다섯 번째로 나설 예정이었던 네이마르는 공을 차 볼 기회조차 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16강에서 모로코에 발목을 잡힌 스페인은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 루이스 엔리케 감독은 킥이 좋은 파블로 사라비아(30·파리 생제르맹)를 연장전에 투입해 승부차기 1번 키커로 내세웠지만 골대를 맞혔다. 일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에겐 승부수조차 없었다. 그는 16강 크로아티아전에서 승부차기에 나설 선수와 순서를 모두 선수들 자율에 맡겼고, 아무도 1번으로 나서려 하지 않자 미나미노 다쿠미(27·AS모나코)가 앞장섰지만 크로아티아 골문을 열지 못했다.

◇승부차기, 누구든 이길 수 있다

경기가 승부차기에 접어들면 양 팀의 전력 차이, 상대 전적 등은 의미가 없다. 넣느냐 마느냐, 50% 대 50%의 확률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역대 월드컵에서 승부차기로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잡는 이변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이번 대회에서도 크로아티아가 8강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 브라질을 잡았고, 4강 진출 신화를 쓴 모로코는 16강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었다. 스페인은 2018 대회 때도 16강에서 개최국 러시아와 승부차기 끝에 패했다. 한국도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 이변을 일으켰다.

주요 축구 강국들의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 전적을 봐도 강한 전력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스페인은 월드컵 통산 승부차기 5번 중 1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 전까지 3승 1패였으나, 크로아티아전에서 1986 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했다.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이라고 평가받는 크로아티아는 2018 대회 때 승부차기 2번을 모두 이기며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일본과 브라질을 승부차기로 꺾어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 승률이 100%(4승)다.

승부차기에선 선수들의 자신감도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전력이 더 세다는 평가를 받는 팀이 부담감이 더 커 실축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상대적으로 약팀일수록 잃을 게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 있게 슈팅한다. 크로아티아가 8강 브라질전 승부차기에서 자신감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크로아티아는 1, 2번 키커가 모두 자신 있게 골대 가운데로 슈팅했다. 이번 대회 전까지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골문 가운데로 향한 슈팅의 성공률은 57%로, 왼쪽과 오른쪽(각 74%)으로 찬 공보다 성공률이 낮다. 그러나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과감함에 세계 최고 골키퍼 중 하나로 꼽히는 브라질 알리송(30·리버풀)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