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여보, 여기 OFC가 나온다.”

아이가 잠들자 육퇴(육아 퇴근)한 아내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TV를 보다 혼잣말처럼 말한다. 화면 구석에 ‘나의 해방일지’라는 제목이 보인다. 요즘 인기 있다는 드라마로군. 거기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의 직업이 OFC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가맹점마다 담당하는 본사 직원이 있다. 그 사람은 하루 종일 담당 점포를 돌며 온갖 궂은일을 다한다. 영업 컨설팅부터 홍보물 부착, 서비스 코칭, 점주에게 신제품 발주 부탁하는 일, 심지어 고객 클레임 처리까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이랄까. 가맹점에 관한 일은 모두 관리한다고 보면 된다. 한 명이 보통 예닐곱 점포를 담당한다. 개별 점포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들른다. 전국에 편의점이 5만개 넘으니, 업계에 1만명가량 그런 전문가들이 활약하는 셈이다.

내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는 OFC라 부르고, SC, FC, SM, SA 등등 프랜차이즈 회사마다 부르는 명칭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편의점 점주들끼리는 본사 담당 사원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저 점주는 어떤 브랜드’라고 재깍 가늠한다. 영문 명칭이 무엇을 줄인 말이냐고요? 하나씩 풀자면 번거롭고, 대체로 들어가는 C가 카운슬러 또는 컨설턴트의 첫 글자랍니다. S는 스토어. 눈치채셨쥬?

아내랑 나란히 앉아 드라마를 정주행한다. 작가가 편의점 점주라도 되는 것일까. 현실과 싱크로율이 높다. OFC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점주를 잠시 ‘해방’시켜주는 일. OFC가 점포에 들를 때마다 나는 그리운 임을 만난 듯 버선발로 나가 반긴다. “이봐, 염 대리. 고마워!” 부리나케 화장실로 뛰어간다. 전국 편의점 점주들의 대장(大腸) 건강을 책임지는, OFC의 거룩한 사명이다. 그러니 동네 편의점에 갔을 때 낯선 얼굴이 계산대에 서 있으면 ‘본사에서 나온 그분’인 줄 아시라.

현실과 맞는 부분도 있고,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OFC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먹고 있는 드라마 속 풍경, 그거 흔치 않은 일이다. 점주도 그렇지만 OFC도 ‘폐기’라면 질린다. 야간에 편의점에 들르는 일도 거의 없다. (OFC도 엄연히 직장인이니, 야근 수당 받아야 할 일이다.) 점주가 OFC에게 반말을 한다? 내가 10년간 편의점을 운영하며 OFC를 열댓 명 겪었지만 말을 낮춘 사람은 한두 명 정도. 기본적으로 서로 존대하는 관계다. 경조사에 개인적으로 부조하는 것도 회사 윤리 규정상 금지돼 있다.

드라마를 보니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이 방문한다고 OFC들이 특정 점포에 우르르 몰려가 대청소를 하던데, 잠깐 스쳐 가는 그 대목을 보면서 깔깔 웃었다. 실제로 꼭 그렇기 때문이다. 동네 편의점에 갔더니 오늘따라 유난히 진열이 반듯하고 바닥은 파리가 미끄러질 듯 반짝이며 간판이 샤방샤방하거든 ‘사장님’ 다녀가신 줄 아시라. 혹은 그 편의점이 에이스급 알바생을 새로 영입했거나.

아주 틀리는 부분도 있다. OFC가 자기 담당이 아닌 편의점에 들르는 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종의 영역 침범에 해당한다. 예전에 맡았던 편의점이라도, 회사에서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고서야, 무턱대고 드나들 수 없다. 게다가 매출이 좋은 가맹점을 본사 직원의 가족이 인수한다?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이, 저게 뭐야. 저랬다가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걸? 해고(解雇)각이야, 해고각.”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편의점이 나오는 장면마다 쫑알쫑알 거들었더니 아내가 맥주 캔을 기울이며 그런다. “입 다물고 드라마나 보셔. 이게 뭐 다큐냐?” 하긴 첫 장면에 나오더라.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지명, 인물, 기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세상엔 사람들이 모르는 직업 세계가 많다. 편의점만 하더라도 OFC말고 RFC라는 직무도 있다. 신규 점포를 개설하는 일만 담당한다. 신규 점포에 상품을 진열하는 일만 전담하는 직업이 있고, 몇 개월에 한 번 편의점에 찾아가 일일이 상품 숫자 세어가며 재고 확인하는 직업도 있다. 가맹점 돌아다니면서 친절, 청소, 진열 상태를 비밀리에 확인하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는 직업 또한 있다. 편의점 회사에는 상품마다 담당자(MD)가 있어, 10년 넘게 오로지 삼각김밥 하나에만 매달리는 담당자를 만난 적도 있다.

그뿐인가. 가맹점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물류센터에서 그것을 찾아 박스에 담는 직업이 있고, 그렇게 피킹(picking)한 상품도 어떤 온도에서 배송되느냐에 따라 트럭 종류가 다르니 각기 다른 직업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 당신이 펼쳐보는 이 신문 하나를 만드는 일에도 수많은 전문 직종의 땀과 노력이 합쳐지는 것처럼, 작은 편의점 하나를 운영하는 일 또한 그렇다. 우리 주위에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나.

‘나의 해방일지’가 만든 유행어 가운데 하나는 ‘추앙하다’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다.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추앙을 애걸하는 것이 아니라, 추앙하라 당당히 명령(!)하는 것이다. 세상 모든 직업은 따뜻이 추앙받아 마땅하다. 이쯤에서 아내가 그런다. “역사상 가장 추앙할 직업은 주부야, 주부. 나를 좀 추앙하라고!” 옳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