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직무 집행 정지가 이뤄진 24일,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은 사전에 짜인 각본대로 군사 작전 하듯 기습적으로 움직였다.
이날 오전 여권(與圈)에서 ‘추미애-윤석열’ 동반 퇴진론이 먼저 제기됐다. 5선의 민주당 중진 이상민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리더십이 이미 위기를 넘어서서 붕괴 단계에 이르렀다”며 “더 이상의 직책 수행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분이 다 퇴진하는 것이 우리 국가 운영에도 더 이상 피해를 안 줄 것”이라고 했다. 동반 퇴진론의 운을 띄웠지만 실상은 윤 총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였다.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추 장관은 검찰 개혁을 열심히 잘 하고 있다. 해임 건의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오후 1시 40분쯤 서울중앙지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74)씨를 의료법 위반과 사기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한다는 보도 자료를 전격 배포했다.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는 장모 최씨가 2012년 11월 주모(50)씨 등과 공모해 2013년 2월 경기 파주에 요양병원을 설립하고 그해 5월부터 2년간 요양급여 22억9000여만원을 불법으로 타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와 황희석 최고위원 등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다. 앞서 주모(50), 한모(44), 구모(72)씨 등 3명은 최씨와 같은 의료법 위반 혐의 등으로 2016년 기소돼 2017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 등의 형이 확정됐는데 당시 파주 경찰서는 장모 최씨는 단순 투자자에 불과하다고 봤고 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최강욱 의원 등의 고발에 이어 추미애 장관은 ‘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을 이 사건 지휘에서 배제했고, 수사를 확대한 중앙지검은 재수사 끝에 이날 당시 결론을 뒤집은 것이다.
다만 중앙지검은 2015년 검경이 최씨 사건 공범 3명을 사법 처리하고 최씨는 불입건하는 과정에 윤 총장이 수사를 무마하려 개입했다는 여권 일각의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 확인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장모 최씨 측 변호인은 “24~25일 의견서를 제출하기로 수사팀과 얘기가 됐는데 의견 진술 기회를 무시하고 갑자기 검찰이 이날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지검 측은 “의견서 제출은 이미 여러 번 했고 더 내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오후 5시 20분쯤 이번에는 법무부가 오후 6시에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 2층에 마련된 법무부 기자실에서 ‘윤 총장에 대한 감찰 관련 브리핑’을 하겠다고 갑자기 통보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브리핑 40여분 전에 일방적으로 전달된 통보였다. 법무부 기자단에서는 “추 장관 취임 이후 반복되고 있는 법무부의 일방적 통보를 보이콧(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추 장관이 직접 윤 총장에 대한 직무 집행 정지 브리핑을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브리핑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추 장관은 예정된 시각을 넘겨 오후 6시 5분 기자실에 도착했다. 법무부 기자실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브리핑 장소는 청사 1층 검찰 기자실로 변경됐다. 기자들은 “브리핑 일방 통보에 대한 설명부터 해달라”고 요구했고, 추 장관은 단상에서 나와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채 “양해 바란다”고 짧게 답했다.
이후 추 장관은 준비된 원고를 15분쯤 그대로 읽었다. 직무 집행 정지 명령은 발동 즉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상 해임에 준하는 조치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 장관 발표 직전 관련 보고를 받고도 별도 언급은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총장 임면권을 가진 문 대통령은 침묵하고 추 장관이 윤 총장을 해임한 모양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이 사실상 이를 승인한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의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 집행 정지 명령 발표 직후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윤 총장은 공직자답게 거취를 결정하길 권고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민주당은 일제히 윤 총장 사퇴를 압박했다.
추 장관의 브리핑이 끝나자 “이 정도 사안이면 청와대에 윤 총장 해임 건의를 직접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추 장관은 질문을 무시하고 그대로 자리를 떴다. “질문을 받으라”는 요구 역시 추 장관은 무시한 채 청사 앞에 대기 중이던 차량에 올라탔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