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정 문화재인 서울 경복궁 담벼락이 17일 스프레이 낙서로 또다시 훼손됐다. 지난 16일 담벼락 44m가 광고성 낙서로 훼손된 지 하루 만이었다. 경찰은 모방 범죄로 보인다고 밝혔다. 추가로 낙서를 한 사람은 18일 자수했지만, 모방 범죄를 유발한 최초 낙서의 용의자들은 사흘째 검거되지 않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새로운 낙서가 발견됐다는 신고는 지난 17일 밤 10시 24분쯤 접수됐다. 최초 낙서로 훼손된 담벼락 바로 옆이었고 앞에는 파출소가 있었다. 가로 3m, 세로 1.8m 크기 새 낙서에는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다음 날인 18일 오전에 20대 남성이 “내가 했다”며 자수했다.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6시간 조사를 받고 귀가한 이 남성은 “자진 출석한 이유가 무엇이냐” “범행 동기가 무엇이냐” “첫 번째 낙서를 보고 따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범행 경위, 공범 유무 등을 확인 중”이라고 했다.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영추문 옆 담벼락에서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된 담을 복구하기 위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 경복궁 담벼락에는 지난 16일 광고성 낙서가 그려졌고, 하루 만인 17일 밤 연예인 이름 낙서가 또 발견됐다. /뉴스1

경찰은 지난 16일 경복궁 담벼락이 훼손된 뒤 범인 추적에 나섰고, 인근 순찰을 강화했다. 하지만 경찰이 최초 범행 용의자를 사흘째 붙잡지 못하면서 모방 범죄까지 발생했다.

최초 낙서 용의자는 두 명으로 남녀 각각 한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스프레이를 이용해 경복궁 영추문과 국립고궁박물관 인근 담벼락에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선전하는 낙서를 했다. 새벽 시간대에 담벼락 앞을 서성이며 행인이나 차량이 지나가면 잠시 멈췄다 낙서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들은 경복궁뿐 아니라 서울경찰청 담벼락도 낙서로 훼손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초 범행 용의자들이 주도면밀하게 CC(폐쇄회로)TV를 피해 도주한 탓에 추적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과 경복궁 관리소 등에 따르면, 경복궁 내외부에는 400대가 넘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많은 CCTV가 있었지만, 미꾸라지처럼 이를 피해갔다는 뜻이다.

용의자 검거가 더디다는 지적에 경찰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에 낙서를 한 이번 훼손 범죄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있다”며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범죄로,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 도심에 대상이 되는 문화재가 많아 첫 사건 이후 순찰과 거점 근무를 강화했음에도 짧은 틈에 또 범행이 벌어졌다”며 “경찰이 한정된 인력으로 다 지킬 수 없는 만큼 문화재 관리 기관과 협력해 CCTV 추가 설치, 관제 센터 연계 등을 통해 추가 범행을 예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경찰은 범인들에게 문화재 보호법 위반과 재물 손괴 등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문화재청도 18일 오전 청장 주재 회의를 열고 이번 사건 관련 조치를 논의했다. 경복궁 담장 외부 감시용 CCTV 20여 대를 추가로 설치하고 서울시내 4대 궁궐인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순찰 인력을 늘리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전문가 30여 명을 투입해 훼손된 담장 복원 작업에도 착수했다. 복원 작업은 일주일이 넘게 소요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