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강원도 원주 중앙로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유세 모습. 지지자들이 파란 풍선과 응원용 막대 풍선을 들고 모였다. /뉴스1

‘나 솔직히 정치는 잘 모르겠고 밍밍이 대통령 시키고 싶음.’ ‘여긴 다 최애는 잼칠라야? 난 차애는 (정)청래’ ‘개준스기 솔직히 잘생기지 않음?’…. (인터넷 커뮤니티 글)

‘밍밍이’ ‘잼칠라’ ‘개준스기’가 아이돌 스타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보다 자연스러울 순 없다. 연예인을 ‘덕질(좋아하는 일에 깊이 몰입한다는 뜻)’하는 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경우는 다반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이돌이 아닌, 정치인. ‘밍밍이’와 ‘잼칠라’는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개준스기’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가리킨다.

3·9 대선을 전후해 이른바 ‘정치 팬덤’의 부상이 심상치 않다. 정치 팬덤은 특정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대하며 그의 팬처럼 활동하는 열혈 지지 집단을 의미한다. 인터넷 정치 팬덤 문화를 연구해온 송경재 상지대 교수는 “과거에도 정치 팬덤이 있었지만, (팬덤이) 이렇게까지 특정 세대·성별을 중심으로 결집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는 드림콘서트?

이재명 고문의 지지자들은 대선 직후 한 포털 사이트에 ‘재명이네 마을’이란 팬카페를 개설했다. 회원 수는 한 달도 안돼 17만명을 넘어섰다. 2030 여성 지지자를 중심으로 ‘이재명을 지키자’는 여론이 퍼졌고, 이들은 연예인 덕질 방식으로 이 고문을 응원하고 있다. 한 여초 커뮤니티 ‘케이돌토크’ 게시판에는 매일 정치 관련 글 수백 건이 올라온다. 이들은 이 고문에게 ‘밍밍이’ ‘잼칠라(이재명+친칠라)’ ‘잼아빠(이재명+아빠)’ 등의 애칭을 붙이고, 이 고문의 ‘개딸(성격이 드센 딸)’을 자처한다. ‘재명이만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잖아. 잼칠라 귀여워!’ ‘잼칠라 피부 진짜 하얀가보네. 진짜 실물 한번 보고 싶다’ 등의 글을 올리고 댓글로 수다를 떤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20대 여성 최모씨는 “(이 고문의) 유세 영상과 과거 블로그 글을 보고 ‘입덕(팬이 됐다는 의미)’하게 됐고, 지지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파면 팔수록 본업(정치와 행정)을 잘하는 사람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 오른쪽 사진은 이 고문 지지자들이 이 고문이 친칠라와 닮았다고 만든 밈. /인터넷 커뮤니티

최씨 등 이 고문의 ‘개딸’들은 이 고문에게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메시지 등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 고문이 ‘우리 개딸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등의 답장을 해주면 이를 캡처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기도 한다. 이들은 아이돌 팬덤의 전유물인 색깔 풍선, 응원봉, 굿즈 등을 손수 제작하고, 4월 예정된 이 고문의 낙선인사 일정을 ‘전국 투어 콘서트’에, 8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아이돌이 총출동하는 ‘드림 콘서트’에 비유하며 기대감을 드러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들이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될 것이고, 이재명 고문의 향후 정치 행보에도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슷한 현상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젊은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매일같이 ‘개준스기(이 대표 애칭) 지켜야 한다’ ‘준스기가 옳았다’ 등의 글을 올린다. 이준석 대표의 장애인 단체 시위 비판 등과 관련해 ‘이준석은 항상 어려운 길만 골라 걸었다’는 이 대표 칭찬 글은 370회가 넘는 추천을 받았고, ‘대통령 되는 그날까지 힘내라 준스기’ ‘이렇게 매력적인 정치인은 없었음’ ‘개준스기 사랑해’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들은 지난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때 결집해 ‘0선’ 30대 정치인 이준석을 당 대표로 밀어 올린 일등공신이다. 이들은 최근에도 인터넷 기사에 이 대표에 우호적인 댓글을 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사모·박사모와는 다르다

과거에도 정치 팬덤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팬클럽’이란 이름을 갖고 최초로 등장한 정치 팬덤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였다. 2000년 노 전 대통령이 16대 총선에서 낙선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지자들이 만들었다. 대선 기간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으고 선거운동을 한 노사모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 전 대통령 이후 모든 대통령 당선들 뒤엔 열성적 지지를 보내는 팬덤이 있었다. ‘명박사랑(이명박)’ ‘박사모(박근혜)’ ‘문팬(문재인)’ ‘윤사모(윤석열)’ 등이다. 특히 문팬을 비롯해 ‘젠틀재인’ ‘문꿀오소리’ 등 문재인 대통령 팬덤은 당선 이후에도 활발히 활동했다. 강성 팬덤은 문 대통령을 ‘이니’라 부르며 옹호하고,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정치인들을 공격하곤 했다.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마포구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거리유세를 하고 있다. 이 후보와 사진을 찍기 위해 지지자들이 몰려들었고, 한 지지자는 응원봉을 들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전문가들은 이재명 고문과 이준석 대표를 향한 요즘의 정치 팬덤은 노사모·박사모 등 과거의 정치 팬덤과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송경재 교수는 “전통적인 정치 팬덤은 이념적 동질감, 인물에 대한 강한 선호를 바탕으로 대상 정치인에 자신이 바라는 정치의 미래를 투영하는 양상을 보였다”며 “반면, 인물보단 메시지를 중심으로 결집한 최근의 정치 팬덤은 자기 이익 중심적이고 단편적 정책을 지향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지금의 정치 팬덤은 과거와 달리 특정 세대와 성별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상당히 협소하고 배타적인 양상을 보인다”며 “이같이 협소한 정치 팬덤은 외연 확장에 한계가 명확하고, 정치 양극화 심화 등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 팬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효능감, 결속감 등을 높인다는 점은 정치 팬덤의 긍정적 측면이다. 반면, 정치 팬덤이 상대 진영 혹은 경쟁자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 증오와 혐오를 양산한다는 점, 대상 정치인에 대한 무비판적·맹목적 추종이 정치를 퇴행시킨다는 점 등은 부작용으로 꼽힌다. 일부 강성 팬덤의 ‘문자 폭탄’은 민주주의를 흔드는 테러 수단이 된 지 오래고,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정치 팬덤의 눈치를 보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송경재 교수는 “노사모는 노무현 당선 직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하지 않고, 정치를 잘하는지 감시하고 못하면 비판도 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최근의 정치 팬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것으로 보이는 정치인에 과몰입해서,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무비판적 지지와 일방적 충성 경쟁을 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팬덤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일체감을 갖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종교집단처럼 변질된 측면이 있다. 이는 문 대통령의 ‘편가르기 정치’의 결과물”이라며 “이재명·이준석 지지자들은 그 단계는 아니다. 이들이 지지자들에게 실망을 안긴다면, 지지자들은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