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비디오를 참고로 칵테일을 독학하다가 자연스레 ‘위대한 레보스키(1998)’를 다시 보았다. 원래도 유명하지만 주인공 ‘듀드’(제프 브리지스)가 마시는 ‘화이트 러시안’ 덕분에 칵테일계에서는 꼭 봐야만 하는 영화로 통한다. 듀드(멋쟁이)라 자임하는 제프리 레보스키는 그저 볼링이나 치고 대마초나 피우는 로스앤젤레스의 백수다. 그렇게 빈둥거리며 살던 어느 날, 그의 삶에 먹구름이 낀다. 이름이 같은 부자의 젊은 아내가 진 빚을 독촉하러 집으로 깡패들이 찾아온 것이다. 동명이인이라 벌어진 오해라고 해명하지만 깡패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좋아하는 양탄자에 소변을 보고 간다.
이런 피해를 항의하고자 동명이인의 집에 찾아가지만 부자 레보스키는 자기 알 바가 아니라고 반응하고, 듀드는 홧김에 그 집 양탄자 한 점을 허락 없이 들고 나온다. 그런 가운데 부자 레보스키의 젊은 아내가 사라지고 몸값 100만달러를 요구하는 편지가 날아든다. 이에 부자 레보스키는 듀드에게 몸값의 전달을 부탁하는데, 앞뒤 안 가리는 듀드의 친구 소브책(존 굿맨)이 개입하는 탓에 상황이 엄청나게 꼬여버린다.
보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좌충우돌 이리저리 튀는 가운데서도 듀드는 나름 유유자적, 틈만 나면 화이트 러시안을 즐긴다. 1시간 58분의 러닝 타임 동안 마시는 칵테일이 총 아홉 잔, 덕분에 사실 거의 잊혀가고 있었던 화이트 러시안이 부활할 수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인기 칵테일의 위상을 누리는 화이트 러시안을 두고 바텐더들은 ‘위대한 레보스키가 살렸다’고 말하고 있다.
화이트 러시안은 ‘블랙 러시안’으로부터 파생된 칵테일이다. 1949년, 벨기에 브뤼셀 소재 메트로폴 호텔의 바텐더 구스타브 톱스가 당시 룩셈부르크의 미국 대사였던 펄 메스타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보드카와 커피 리큐어를 2.5:1의 비율로 온더록스 잔에 담아 만든다. 여기에 크림을 더하면 화이트 러시안이 되니 비율은 보드카와 커피 리큐어, 생크림이 각각 5:2:3이다. 이 비율을 살려 1인분, 즉 한 잔을 만든다면 세 가지 재료를 각각 25, 10, 15밀리리터(mL)의 배수로 더해준다.
고작 세 가지 재료뿐인 칵테일이라 원래 간단하지만 생크림을 우유로 대체하면 만들기가 좀 더 쉬워진다. 컵에 얼음을 충분히 담고 보드카와 커피 리큐어를 부은 뒤 우유를 적당히 따라 채워주면 된다. 영화 속에서 듀드도 계량 없이 대강 술을 따라 만들고, 크림도 ‘하프 앤드 하프’를 쓴다. 우유와 생크림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유지방을 10.5~12%로 맞춘 제품(생크림은 약 36~40%)인데 국내에는 없으므로 우유로 대체해도 된다. 결국 ‘화이트 러시안’은 술을 더한 커피 우유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듀드의 친구 소브책이 꼬아 놓았다고 생각한 사건은 애초에 자체적으로 더 꼬여 있었다. 아내는 그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뿐인데 부자 레보스키는 이를 기회 삼아 재단의 돈을 횡령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듀드에게는 빈 가방을 주고 100만달러를 자신이 먹어 버렸다. 이 모든 흉계를 알아차린 듀드와 친구들은 결국 복잡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만, 부자 레보스키의 아내를 납치했다고 꾸며댄 허무주의자들이 찾아와 한판 격투를 벌인다. 듀드는 볼링공을 무기 삼아 이들을 물리치는데 그 과정에서 친구 도니를 심장마비로 잃고 만다.
원래 화이트 러시안을 비롯한 커피 칵테일은 오랫동안 ‘칼루아’로 만드는 것이 정석이라 여겨졌다. 칼루아가 맛있어서 그렇다기보다 경쟁 상대가 없는 유명 제품이라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1998년의 듀드 또한 칼루아를 집에 여러 병 쟁여두고 화이트 러시안을 만들어 마셨는데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호주의 커피 리큐어 ‘미스터 블랙’의 등장 덕분이다. 칼루아가 럼에 커피를 더해 만든 리큐어라면 미스터 블랙은 더 중립적인 보드카에 콜드브루(냉침) 커피를 더해 만든다. 칼루아에 비하면 덜 달고 깔끔해 화이트 러시안을 만들어도 한결 더 맛있다. 칼루아와 미스터 블랙 모두 대형 마트에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