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문화부장

지난해 경상도에 놀러 가서 이런 라디오 캠페인을 들었다. "안녕하십니꺼. 요즘 제 주위에서는 다들 서울말을 배울라캅니다. 하지만 서울말도 좋지만, 정감 있는 우리 사투리 얼마나 좋습니꺼."

경상도 소녀는 동네 말을 사랑하자고 호소하고 있었다. 실제로 요즘 유난히 경상도 사투리가 코미디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느낌이다. "내 촌놈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턱별시(특별시)다" 하는 사투리 말이다.

한때 조폭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호남과 영남 사투리의 노출도는 반반이었다. 그런데 2010년 호남의 한 지자체는 "전라도 사투리가 악역의 대상으로만 등장하고 있어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가 악한 자들로 각인된다"며 "영화와 드라마를 구성한 작가협회 또한 전라도 사투리의 참뜻을 깊이 혜량해 건전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한다"고 제안했다.

혹 그 때문이었을까. 대중매체에서 전라도 사투리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한 방송작가는 "직접 공문을 받지는 않았지만, 굳이 전라도 사투리를 써서 논란이 되느니 안 쓰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은 나빠졌다. '호남 사투리 비하'가 사라진 자리에 '호남 비하'라는 더 살벌한 감정이 자리 잡은 것이다. 지난 달 전남일보는 '호남 비하 도 넘었다' '도 넘은 인터넷 호남 비하, 적극 대응 나선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잇달아 실었다. 내용은 이렇다. "'홍어' '전라디언(전라도인의 비하)' '슨상님(김대중 전 대통령 비하)'… 이런 단어가 최근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대선 당시 호남 지역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나오자 비하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폭도들 소행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니 교과서를 통해 더 많이 교육해야 한다. 호남 비하 사이트를 폐쇄하고, 지자체장들이 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소개했다. 실제로 고발 조치에 따라 폐쇄된 인터넷 사이트도 있었다. 관련 글을 보니 지면으로 옮길 수 없을 만큼 민망한 수준이었다.

지역감정을 다룬 기사에는 이런 반응도 나온다. "현직 대통령을 육두문자로 욕해도 되는 세상에 왜 호남만 그렇게 하면 안 되나" "호남 비하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지지표가 많이 나온 대구를 '반역의 도시'라고 하지 않나" 하는 것들이다. 정치적 입장만 다르면 대통령에게도 '개○○'라 공개적으로 욕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이걸 100% 언론 자유의 부작용으로만 치부하기엔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호남 비하의 심각성이 '영남 비하'로 위로 되는 것도 아니다.

호남 차별이 천년 이상 됐다는 사람도 있고, 수십 년 된 감정이라는 사람도 있다. 시발점에 대한 진단이 다르듯 내놓는 해법도 제각각이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강력하게 법으로 처벌하자는 주장, 새 정부에서 호남인을 많이 등용하고 예산을 더 줘야 한다는 지적, 5·18 관련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반대편에선 '5·18'의 역사적 의미가 과도하게 성역화된 까닭에 사람들이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 어떤 게 정답인지, 해법이 있기나 한 것인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런 '허무한' 글을 쓰는 이유는 호남의 맛을 탐하던 입으로 그 지역의 사람을 맹목적으로 비하하는 이중적 세태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앗따, 슨상님"이 그저 정겨운 말로 쓰이는 날은 정말 오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