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미국 최대 은행 중 하나인 BOA와 증권회사인 메릴린치가 합병했을 때 3만명 이상이 해고될 것이라고 했었다. 전체 사원 중 10%가 넘는 숫자였다. 감원(減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몇달 전에는 아시아 담당 임원들이 상당수 해고됐다.
민간 기업은 조직 개편을 할 때 인원 정리를 빠뜨리지 않는다. 경영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회사는 말할 것 없고 회사를 더 키우려는 곳도 기존 사원을 정리하거나 재배치한다. 유능한 인재를 영입해 앉힐 빈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원들은 회사의 조직 개편 움직임에 고성능 센서를 가동한다. 언제 자기가 '명퇴'대상이 될지 몰라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정부 조직 개편을 둘러싼 공무원들의 다툼에는 민간 기업에서 찾을 수 없는 세 가지 증상이 뚜렷하다. 공무원은 조직 개편을 해도 해고 불안에 떨지 않는다. 연봉 삭감도 걱정하지 않는다. 어느 부서로 가나 공무원 봉급은 똑같다. 마지막으로 퇴직 후 생활이 달라질 게 없다. 공무원 누구에게나 죽는 날까지 연금이 보장된다.
자리, 연봉, 퇴직 후를 보장받고 있건만 이번에 조직이 달라지는 부서 공무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조직 개편이 헌법 위반인 것처럼 과장한 장관이 있는가 하면 세종시로 못 가겠다며 집단 사표를 낼 듯 협박조로 나오는 간부들도 있다. 온갖 인연을 찾아 국회의원들을 쫓아다니느라 명절 기분을 못 낸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정부는 지난해 산아(産兒) 제한 행정을 폐지했다. 산아 제한이란 아이를 적게 낳도록 한다는 말이다. 이 단어는 출생률이 가구당 2명 이하로 떨어진 25년 전 사어(死語)가 됐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저출산이 국가적인 골칫거리로 떠오른 이후에도 어느 공무원인가는 이 일을 붙들고 있었다는 말이다. 삼성전자라면 과연 흑백 TV 기술자들에게 20년 이상 일자리를 보장해주었을까. 각 부처 곳곳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꼭 잡고 있는 사례가 적지않다.
공무원은 산업구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방송산업이 각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시장 규모는 연간 10조원 안팎이다. 정보통신산업의 시장 사이즈는 55조원에 달한다. 그런데도 방송을 우선하는 조직을 유지하자는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그동안 누려온 권한에 대한 공무원들의 미련은 첫사랑에 대한 그것보다 훨씬 진하고 훨씬 오래간다.
경영학의 수많은 연구는 '조직 통폐합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려운 논문을 찾아 읽을 필요조차 없다. 역대 정권의 정부 조직 개편이 기대했던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새 정권이 등장하면 '내가 하는 조직 개편만큼은 다르다'며 공무원 조직을 흔들어댄다.
정치권의 잦은 조직 개편에 공무원들은 생존법을 벌써 터득했다. 다른 부서로 강제 이주(移住)를 당하더라도 '5년만 참자'고 다짐한다. 공무원은 해고나 임금 삭감,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못마땅한 부서에서도 세월만 보내면 그만이다.
이명박 정부는 교육과 과학이 멋지게 통합할 것이라며 교육과학기술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산하 기관에 빈자리가 생기면 교육부 몫, 과학기술부 몫을 나눠 챙겨 갔다. 언젠가 헤어질 것이라고 보고 서로 자기 영역을 지켰고 상대방 영역도 존중했다. 교육과 과학이 화학적 융합 반응을 일으켜 이공계 대학이 몰라보게 변했다는 평가가 나온 적은 없다.
민간 회사라면 통합된 조직이 2~3년 내 실적을 내지 못하면 다시 개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그저 다음 정권을 기다렸다. 그들의 예측은 역시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정부의 '옥동자'라는 미래창조과학부도 5년 후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GM과 포드의 역사에도 'GM 가족' '포드 가족'이라는 틀 아래 경영인과 사원이 한 식구로 뭉쳤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자동차의 도전을 받고 나서는 가족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고 해고와 임금 삭감을 연거푸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공무원들을 뛰게 만들려면 조직 개편과 함께 긴장의 강도를 높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서류 발급 등 많은 업무가 민간 회사에 위탁해도 문제가 없다. 관련 조직과 인원을 축소해도 된다는 말이다. 민간 택배회사에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들이 누리는 지위와 혜택을 똑같이 제공해보라. 우정본부 공무원 4만4000여명은 곧 경쟁력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도 우정본부 사람들은 왜 소속 부서를 옮겨야 하느냐고 투덜거린다.
정부 조직 개편이 성공하려면 공무원들의 꽁무니에 불을 댕겨야 한다.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직장, 연봉, 연금을 몽땅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입력 2013.02.09.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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