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여자 후배의 휴대폰이 '딩동'거렸다. 문자메시지였다. 킥킥 웃더니 내용을 공개했다. 후배의 출신 대학을 언급한 뒤, 특별히 10% 할인해주겠다는 결혼 정보 업체의 문자였다. 연회비가 270만원인데, 10% 할인하면 243만원이다. 무려 27만원이나 할인해 준다니 웃어야 할지, 270만원이라는 연회비에 울어야 할지 모르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직전에 한 젊은 소설가와 최근의 결혼 풍속도를 화제로 대화를 나눈 참이었다. 장편 '체인지킹의 후예'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작가 이영훈(35)은 자신이 경험한 결혼 정보 업체 이야기를 들려줬다.
세 번 만남을 주선하고 회비 30만원을 받는다고 치자. 첫 만남 뒤 커플매니저가 전화를 걸어온다. "그분을 더 만나시겠습니까?" 싫다고 말하면 두 번째, 그때도 실패하면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상식적이다.
그런데 잘 몰랐던 게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 첫 번째 여성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다시 만나 새로운 감정이 시작된다고 해도 그녀를 만나서는 안 된다. 계약 위반이다. 고객 변심으로 인한 환불을 받아주지 않는 인터넷 쇼핑몰처럼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다면 변심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돈만 내면 조건 '변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외모와 조건에 만족할 수 없을 경우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10만원을 더 내면 5㎝ 더 큰 여자, 20만원을 더 내면 초등학교 교사를 만나게 해 주겠다는 식이다.
부모님과 그 이전 세대의 결혼 방식에 대해 요즘 젊은 세대는 '야만적'이라는 형용사를 쉽게 쓴다. 상대방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부모가 정해준 사람이랑 결혼하거나 집안과 집안, 가문과 가문 간 격차를 따져본 뒤 결정했던 결혼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때와 지금 중 어느 결혼이 더 야만적인가.
영국 풍속화가 윌리엄 호가스(1697~1764)의 '최신식 결혼-결혼식 후'라는 작품이 있다. 18세기, 신분 상승을 꿈꾸는 상인과 몰락한 귀족 사이의 혼인 윤리를 보여주는 세태화다. 부유한 상인의 딸인 신부는 돈 많은 아버지가 지참금을 내고 데려온 멋진 신랑을 힐끔힐끔 쳐다보는데, 가난 때문에 마지못해 결혼에 동의한 귀족 신랑은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다. 이 와중에 강아지는 신랑의 겉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있다. 레이스 달린 여자 모자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이 홍등가에서 성(性)을 탕진하고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벽난로 위에 걸린 그림에는 큐피드가 폐허 더미 위에 앉아있다. 이 결혼이 미개하고 한심한가? 그렇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더 문명화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만으로 결혼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고 믿을 나이는 물론 지났다. 하지만 사랑조차 없이 시작한 결혼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까. 키 5㎝당 10만원을 추가하는 지금의 결혼 풍속도에서 폐허 더미 위의 큐피드가 자꾸 어른거렸다.
입력 2013.01.2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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