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내리는 날,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친구들끼리 뭉쳐서 한 차로 조문을 떠났습니다. 난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흩날리는 눈발이 아름다웠습니다. 친구들이 조문 가는 길이란 사실도 잊은 채 떠들고 있을 때, 무심히 백미러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백미러 속에 아버지가 앉아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희로애락을 같이 즐기니 당연히 닮는 거겠지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을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백미러 속의 제 모습은 아버지를 꼭 닮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 핏줄 때문이겠지요.
아버지는 15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부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을 하십니다.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가 치지 않는 한 하루도 빠지는 날이 없습니다. 날이 너무 춥다고 만류하면, 한 시간 정도 몸을 풀고는 어김없이 집을 나섭니다. 약간 답답한 마음에 지나가는 말로 물었습니다.
"운동을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니들한테 짐 될까 봐."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몸이 아프면 자식한테 짐 되니까, 짐 되기 싫어서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다 가시려고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신답니다. 저는 겉모습만 아버지를 닮아갈 뿐 모자라도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찾아뵙겠다고 해놓고 변명만 늘어놓은 게 벌써 몇 번인지 모릅니다. 아버지 가슴 밟아가며 별난 욕망을 꿈꾸던 젊은 날 이불을 덮어주시던 아버지는 오늘도 저의 변명을 덮어주십니다. 자식을 위하여 어느 길이든 가시는 아버지.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이 되시는 아버지. 눈물이 차오르는 건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친구 아버님의 영정을 보면서 어느 시인의 시 구절이 생각납니다. '저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이번 주말엔 꼭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