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6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서대문구청 보건소 별관 8층 강의실. 연세대 물리학과 4학년 송아롬(21)씨가 여고생들에게 "'근의 공식'은 기억나니? 인수분해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수학 문제를 설명하고 있었다. 송씨는 학부 졸업반이라 학점 관리도 하고 '스펙' 쌓기에 정신없어야 할 때지만 이날부터 서대문구청에 1주일에 2~3번씩 나와 오후 6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로 했다. 송씨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10년 가까이 고향인 경남 김해에서 40~50대 아주머니들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함께 수학을 가르치는 연세대 건축학과 4학년 조주연(25)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어려운 형편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고, 영어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 최재형(20)씨는 "외동딸로 자랐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도움도 주고 친동생처럼 지내고 싶어 자원했다"고 말했다.

이들과 같은 대학생 교사 16명은 지난 8일부터 서대문구에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공부하는 고등학생 54명을 대상으로 국·영·수 과목 과외를 해주고 있다. "빈부 차이에 따른 교육 격차를 없애자"며 지난 2010년 9월 세워진 사단법인 티치포코리아(TFK·Teach For Korea)에 속한 대학생들이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에 다니는 이들은 각 학교 웹진이나 현수막에 붙은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자원했다. 강사료는 받지 않는다.

사단법인 티치포코리아에 속한 자원봉사 대학생 교사들이 9일 오후 6시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서대문구청 보건소 별관에서 고교 1학년 학습 지도에 나섰다.

서울대 재료공학과 1학년 허성은(18)씨는 "우리 집안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것은 아니라서 중3 때 수학·과학 학원을 잠시 다닌 것 말고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 "신입생이라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는 것보다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돕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TFK 이사장인 정창영 연세대 전 총장은 "자기 공부에 바빠 돈도 받지 않고 무료 강의를 해줄 대학생 자원자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모집을 하니 열정적인 대학생들이 참 많더라"고 말했다.

TFK와 함께 '저소득가정 고등학생 멘토링 사업'을 시작한 서대문구는 지난 9월 구내 저소득층 고교생 가운데 수업을 듣고 싶다고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집하고, 구청 본관과 보건소 별관에 강의실로 쓸 수 있는 약 165㎡ 크기 회의실, 공무원 강의실 등 4곳을 교실로 제공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8일 첫날 수업부터 대학생 교사들은 "오후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매일 수업이 이뤄질 것이니 수업에 절대 빠지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꼼꼼히 출석을 불렀다. 수업 전 휴대전화를 걷고, 학력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간이 시험도 치렀다.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최완(23)씨는 동료 교사들에게 "영어 단어 교재 한 권을 빨리 선정해서 매일 단어 시험도 보고 깜지(종이에 빽빽하게 단어를 여러 번 써오는 것) 숙제도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교 1년생 양형진(가명·16)군은 "지난 1학기 기말고사 수학 성적이 100점 만점에 12점이었다"며 "천문학자가 되는 꿈을 이루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형들 도움을 받아 수학 점수를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