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자킨토스섬은 오랫동안 '시각 장애인의 섬'으로 불렸다. 주민 4만명 중 1.7%, 682명이 앞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그리스 정부가 조사했더니 진짜 시각 장애인은 50명을 조금 넘었다. 나머지 훤하게 눈 뜬 가짜 장애인들은 1998년부터 달마다 325유로씩 장애인 수당을 받아왔다. 택시 운전사와 사냥꾼도 끼어 있었다. 공립 병원 의사가 뇌물을 받고 허위 진단서를 떼줬고 선출직 공무원들도 표를 얻는 대가로 눈감아줬다.

▶그리스 경제 위기를 부른 두 주범으로 과잉 복지와 공직 부패가 꼽힌다. 독일 정부는 지난 2월 세무 전문가 160명을 그리스에 보내 선진 세무 행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해마다 탈세액이 50억~60억유로나 되는 '탈세 천국' 그리스의 세무 비리를 바로잡지 않고는 구제 금융을 퍼부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엔 '4-4-2'라는 탈세 셈법이 있다. 세금이 10이라면 4를 탈세하고 4는 세리(稅吏)에게 뇌물로 바치고 2만 납부한다는 얘기다.

▶그리스 공무원은 오전 8시 30분 출근해 오후 2시 30분 퇴근한다. 워낙 지각자가 많아 제 시각에 출근하면 '정시 출근 수당'도 받는다. 낮 기온이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니까 일찍 퇴근해야 한다지만 15도까지 떨어지는 겨울에도 퇴근 시각은 변함없다. 85만 공무원에게 주는 월급만 GDP의 53%를 차지한다. 정부가 2004년부터 5년 동안 실업률을 낮추려고 7만5000명을 더 뽑은 탓이다. 공무원이 노동인구 넷 중 한 명꼴이고 적어도 25%는 쓸데없는 인력이다.

▶결국 그리스 정부가 공무원 4만5000명을 퇴출시킬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 판단'에 관한 시험을 치르게 해 성적이 나쁘면 쫓아낸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정부가 곧 부인했다. 한번 뽑은 공무원에게서 철밥통을 빼앗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시청은 2007년 무능·태만 공무원 퇴출제를 시행했다. 퇴출 대상자 중엔 민원 전화를 받기 싫어서 벨소리를 꺼놓은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재교육하면서 풀 뽑기를 시켜 인권침해 논란도 일어났다.

▶서울시는 2010년 12월 "무능·태만 공무원이 해마다 줄었다"며 슬그머니 퇴출제를 폐지했다. 그 4년 사이 쫓아낸 공무원이 59명이었다. 지난해 퇴출 공무원이 낸 소송에서 서울시 퇴출제가 옳았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 제도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파킨슨은 "공무원 수는 일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일정한 비율로 증가한다"고 했다. 파킨슨 법칙을 깨는 것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리스 정부가 공무원 퇴출에 성공한다면 그리스 신화에 버금가는 현대판 전설로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