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강원도 강릉의 한 아파트 욕실에서 69세 박모 할머니와 생후 10개월 된 외증손자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는 옷이 벗겨져 있었고 박 할머니는 변기 옆에 쓰러져 있었다. 박 할머니가 보름쯤 전부터 안 보였다는 게 이웃들 말이었다. 할머니는 그 즈음 욕실에서 외증손자를 씻기려다 넘어졌고, 외증손자는 그동안 방치된 채 굶어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 할머니는 4월 위암 수술을 받은 뒤 5월 재발했지만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았고 고혈압도 앓고 있었다. 할머니의 손녀딸인 아기 엄마는 19세인데 작년에 아이를 낳고 시댁에서 넉 달 정도 살다 나와 할머니에게 아들을 맡기고 돈 벌러 간다며 경기도 군포로 떠났다고 한다.

암 수술 받은 몸으로 혼자 아기를 돌봐야 했던 할머니가 평소 어떤 생활을 해왔을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생후 10개월이면 부모 사랑 듬뿍 받으며 걸음마 연습을 하고 유모차 타고 바깥나들이를 할 때다. 그런 아기가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서 굶어 죽었다.

박 할머니의 두 아들 가운데 속초에 사는 큰아들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인지 1년에 한두 번 문안 인사를 오는 수준이라고 한다. 숨진 아기의 할아버지인 작은아들은 처와 사별하고 나서 막노동을 하며 혼자 살고 있다. 젖먹이를 맡기고 떠난 손녀딸은 6월 초 휴대폰을 잃어버린 뒤 새로 살 능력이 못 돼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 계층이 겪는 가족 해체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가 고스란히 담긴 슬픈 이야기다. 소득 2만달러 국가의 한쪽 구석엔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어 가족끼리도 서로 건사할 엄두조차 못 내고 살아가는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많다.

25년간 서울 사당동 달동네와 상계동 임대아파트를 대상으로 빈민 연구를 해오다가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낸 동국대 조은 명예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의 빈곤 구조가 너무 굳어져 계층 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조 교수가 연구한 22가구의 가족들은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 택배, 길바닥 옷장사, 미싱 일, 밤 까기, 봉투 붙이기 같은 일을 하고 산다. 조 교수는 "중국집 배달부를 경계 대상이 아니라 '누구네 집 셋째 손주'로 여기게 되고, 못사는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아파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도 그 사회의 능력"이라고 했다.

강릉의 박 할머니는 누구한테 구원(救援) 요청 한번 못 해보고 외증손자와 함께 저세상으로 갔다. 우리 사회가 밑바닥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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