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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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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는 창업자 매년 86만명… 땡처리업자에 넘겨진 '서민의 꿈'

  •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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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2.05.22 03:06 | 수정 : 2012.05.23 07:50

    폐업처리업체 보름간 동행 취재… '2012년 한국, 서민의 삶'
    프랜차이즈 횡포 못이겨 - 수천만원 바가지 쓰고 인테리어 했는데 폐업견적은 고작 100만원
    제2의 인생 꿈 접어 - "대기업은 잘릴까봐 걱정 중소기업은 망할까봐 걱정
    창업했더니… 난 인생의 루저"

    
	망하는 창업자 매년 86만명… 땡처리업자에 넘겨진 '서민의 꿈'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07만여명이 창업을 하고, 86만여명이 가게 문을 닫는다. 문 닫는 가게들에서는 대한민국 창업자들의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5년째 폐업처리 업체를 운영하는 김맹호(56) 사장. 그는 폐업을 결심한 가게에서 연락을 주면 그곳으로 찾아가 폐업 견적을 내준다. 서로의 눈높이가 맞으면 김씨는 폐업가게의 물품을 갖고와 중고물품으로 다시 판매한다. 우리 사회 바닥에서 벌어지는 서민들의 창업 애환을 현장에서 두 눈으로 목격하는 김 사장과 보름간 동행하며 7곳의 폐업가게를 찾아봤다.

    살벌한 분위기에 말 한마디, 웃음도 눈치 보여

    "쉿!"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회현동에 위치한 대형 주상복합건물 1층의 피자가게. 김맹호씨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는 "이 가게 문 연 지 3개월 만에 망했어. 조용히 얼른 끝내고 가는 게 상책이야"라고 했다. 벽에 고정된 선반을 떼어내는 데 애를 먹던 김씨는 "나사가 장난 아니게 깊게 박혔어. 장사 진짜 오래 할 생각이었나 봐"라고 말했다. 오전 11시 30분, 200㎏이 넘는 피자오븐이 트럭에 실리면서 9평의 피자가게 폐업작업이 끝났다. 물건을 싣고 가던 길에 김씨는 "이제 4년이 넘어가지만 남의 불행이 내 생업이니까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수천만원을 들여 내부시설을 만들었는데, 폐업 견적으로 100만~200만원이 나오면 그자리에서 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다. 김씨는 "그렇다고 값을 더 쳐줄 수는 없지. 중고시세가 엄격하니까"라고 말했다.

    본사 횡포 못 이겨 1년 만에 문닫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4월 30일, 커피숍 불이 꺼져 있었고, 유리문에는 '매장 내부수리 관계로 휴무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전화를 하자 곧 나타난 사장 김모(여·42)씨는 "가게 낸 지 1년도 안 됐는데 '망했다'고 쓰기는 창피하니까…"라고 했다.

    "이 조그만 탁자 6개랑 의자 6개가 1000만원이에요. 말이 돼요?"

    김씨가 작년 5월 가게를 내며 들인 돈은 2억3000만원. 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받아도 1억8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판이다. 인테리어 하는 데 4125만원, 각종 기기와 물품구매에 8000만원 넘는 돈을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져갔다. "커피머신이랑 오븐 등 10개 기계에 4800만원 냈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가격 찾아보니까 다 합쳐서 1500만원이에요. 이 정도 남겨먹으면 사기꾼 아니에요?"

    
	4월 30일 오후 8시, 부천시 원미구의 폐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폐업처리업체 김맹호 사장(맨 왼쪽)과 인부 1명이 커피숍 기기를 빼고 있다. 커피숍 사장 김모씨(맨 오른쪽)는 “너무 힘들어서 가게를 접으려고 한건데,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4월 30일 오후 8시, 부천시 원미구의 폐업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폐업처리업체 김맹호 사장(맨 왼쪽)과 인부 1명이 커피숍 기기를 빼고 있다. 커피숍 사장 김모씨(맨 오른쪽)는 “너무 힘들어서 가게를 접으려고 한건데,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프랜차이즈에 밀려 7년 만에 문 닫는 케이크카페

    지난 4월 5일. 서울 명지대 앞 카페로 폐업 견적을 뽑으러 갔다. 같은 앞치마, 모자까지 쓴 부부는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3일 후 폐업을 한다고 했다.

    18살 때 처음 제빵기술을 배운 사장 이모씨는 호텔과 대형 제과점에서 일하다 7년 전 결혼과 함께 자신의 케이크집을 차렸다. 그러나 지난 7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오는 손님들은 단골이지만 대부분 유명 브랜드 빵집만 찾죠."

    이씨는 케이크 포장지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별다른 장식이나 그림이 없는 밋밋한 연두색 포장지였다. 포장지 제작업체가 대기업 위주의 대량주문만 받아서 이씨처럼 영세상인은 싸구려 포장지밖에 못 쓴다고 했다. 이씨는 "단골손님들한테 문 닫는다는 얘기도 못했다. 조용히 사라지려고 한다"면서 "꼭 손님없는 일요일에 폐업작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일요일이던 8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작업은 2시간도 안 돼 끝이 났다. 부부는 "시원하다"는 말을 반복했지만 "그래도 제 가게였잖아요"라며 폐업작업을 끝까지 지켜봤다.

    제2 인생 꿈꾸며 차린 서울 응암동 만두소 공장

    4월 16일, 진모씨의 만두소 공장 기계들엔 뽀얗게 밀가루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바닥 여기저기엔 오래전에 사용됐을 만두피들이 누렇게 변색된 채 흩어져 있었다.

    "중소기업 다니면서 한 달에 300만원은 받았어요. 그런데 대기업은 자기 능력이 모자라서 잘릴 걱정을 하지만, 중소기업은 내가 잘리기 전에 아예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애들은 커가는데, 뭔가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거예요."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해줄 줄 알았던 공장 문은 2011년 5월에 열었다. 집을 팔아 마련한 9000만원 가운데 생활비 2000만원을 떼어놓고, 7000만원을 투자했다.

    "1년 동안 계약 1건도 못 땄어요. 큰 회사에서 이렇게 꽉 잡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다 제 잘못이죠." 이날 진씨와 김맹호 사장은 140만원에 폐업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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