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당에서는 정말 잔일이 많았어요. 하루 12시간 내내 거의 쉬지도 못했어요. 5분 만에 밥을 해치워야 하는데 저희끼린 '먹는다'가 아닌 '마신다'라고 말하곤 했죠. 그런데 프랑스 식당으로 옮기니 점심 저녁 사이 '문 닫는 시간'이 있어 2~3시간 정도 푹 쉬어요. 교대 근무도 할 수 있는데 월급은 한식당과 비교해 평균 20~30% 많이 받아요. 이러니 요즘 누가 힘들게 한식당에서 일하겠어요."

서울의 한 프랑스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4년차 요리사 장범식(28·가명)씨는 기자와의 대화 중 "이 식당에 쉬는 시간이 있어 가능하지,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꿀 상황"이라며 말을 이었다.

2005년 A대학 외식조리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의 한 한정식집에 취직했던 그는 '한식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꽤 이름난 한정식집이기에 초봉도 다른 소규모의 한식당보다 30만~40만원이 많은 120만원을 받았다. 그게 프랑스나 이탈리아 식당에 취직한 다른 동기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사장은 "1년만 열심히 일하면 월급을 많이 올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뒤 그의 말은 이랬다. "이 업종 상황을 몰라서 그러냐. 한식당은 1년 만에 월급 올려주는 곳이 아니다. 1년 더 하면 대폭 올려주겠다." 꾹 참고 1년을 기다렸다. 힘들어도 이를 악물었다. 육수 뽑는 솥을 나르느라 허리도 다치고, 급하게 밥 먹느라 위염도 생겼다. 그 뒤 "열심히 했으니 15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 사장은 "못 주겠다.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 그 돈이면 임금이 싼 신입 요리사 둘을 쓰겠다는 것이다.

양식당은 총주방장 아래 부주방장, 조리파트팀장, 중간요리사, 보조요리사 등 단계가 체계적인 데 비해 보통의 한식당은 주방장 밑에 어린 요리사들이 보조하는 구조다. 한 번 만든 메뉴를 반복해 내기 때문에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창의성 없는 메뉴도 그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했다. "전국 어느 한정식집을 가도 기본 메뉴는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양식당에 가보면 계절별·요일별로 조금씩 변화를 준 요리들이 자꾸 개발돼요. 월급도 꼬박꼬박 올려주고, 근무 여건도 나은데 요리 배우는 재미까지 있는 것이죠. 양식당에선 최소 3년은 한자리에 몸담는 게 보통이에요."

한식당을 그만둔 뒤 뷔페식당으로 옮겼다. 한식당에 가려 했더니 2년차 '고가(高價)'의 요리사를 쓰려는 곳이 없었다. 뷔페식당으로 옮긴 덕에 양식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식당으로 스카우트될 수 있었다. 12시간 근무 중 3시간을 쉬니 하루 평균 9시간 일하고, 일주일엔 5.5일 근무한다. 교대 근무가 가능해 5일 근무하는 요리사가 대부분이다. 한식당에선 주 6일 근무지만 초과 근무도 많았다.

'한식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던 그였기에 최근 자주 언급되는 '한식 세계화'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식 세계화다 뭐다 해서 나오는 음식을 보면 외국인 입맛에 맞춘다며 한식도 아니고, 양식도 아닌 정체성 없는 음식들이 많아요. 한식을 좋아하면 자연스레 한식 먹는 방법도 배우게 되는 거 아닌가요. 우리끼린 웃긴다고들 하죠." 그렇다면 그는 다시 한식당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아니요. 지금 시스템으론 힘들죠. 나도 예전엔 최고의 한식 요리사가 되고 싶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