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문제 풀어주는 만능키… '트리즈'(TRIZ·창의적 문제해결 이론)를 아십니까

    입력 : 2009.03.21 04:08 | 수정 : 2009.03.27 15:15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의 트리즈 활용법 강의

    불황을 맞아 모든 기업이 비상이다. 회사 자금은 바닥이 났고, 매출 그래프는 하향 곡선이다.

    이쯤 되면 제품개발팀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긴급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그리고 던지는 한마디. "경쟁사 제품을 압도할 고성능 제품을 개발하자. 불황에도 팔리려면 제품 가격은 아주 싸야겠지."

    하지만 팀장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입에선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 값도 싸면서 성능도 뛰어난 제품을 어떻게 만들라는 거지?


    ■40가지 해결 원리만 알면 문제의 90%는 풀 수 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 대처하는 이론 중 하나로 '트리즈(TRIZ)'라는 것이 있다.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머리글자를 딴 것인데,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원리'로 번역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모순의 해결법은 40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이다.

    트리즈 이론은 1960년대 구소련의 엔지니어 겐리흐 알트슐러(Altshuller)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들은 300만건 이상의 특허와 발명품을 분석, 그 안에 숨은 문제 해결의 원리를 40가지로 정리해 냈다. 처음엔 구소련 내에서만 주로 사용되다,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한 뒤 서구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 전파되기 시작해, 삼성과 LG, 포스코, LS 등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트리즈 이론은 모든 문제가 모순적 상황 때문에 발생한다고 본다. '성능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싼 것', '얇으면서도 튼튼한 것', '직원 수를 늘리지 않으면서도 영업력을 강화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알트슐러 등은 이런 수많은 문제들이 결국 39개의 변수〈표1〉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 낸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모순들을 40가지의 해결 원리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표2

    그래픽=박상훈 기자 ps@chosun.com

    트리즈는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해법을 찾아낸다. 즉 '모순의 원인 파악→모순의 원인을 39가지 변수 중 적합한 것으로 치환(置換)→변수들의 조합(組合) 구성→최적의 해결 원리 도출'이 그것이다. 트리즈가 애초 신제품 개발을 위해 발명됐기 때문에, 변수들은 모두 공학(工學) 용어들이지만, 최근엔 이 변수들을 경영·정치·사회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사용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R&D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트리즈

    이제 실제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1990년대 말 A전자는 양문형 냉장고에 부착할 홈바(문을 열지 않고 음료수 등을 쉽게 꺼낼 수 있는 장치) 디자인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초기의 냉장고 홈바는 접이식 이음쇠(링크)를 활용해 문을 여닫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음쇠에 어린 아이들의 손이 자주 낀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음쇠를 활용하지 않을 경우, 홈바가 튼튼해 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A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러시아의 트리즈 전문가에게 자문했다.

    ①모순의 원인 파악

    우선 모순의 원인을 파악해 정의해야 한다. A전자 입장에서 보면, 제품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음쇠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전한 제품을 위해서는 이음쇠를 없애야 한다. '내구성'과 '안전성'이 대립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②적합한 변수로 치환

    A전자의 모순의 원인 중 하나인 '내구성'은 트리즈의 39가지 변수 중 '강도(强度)'로 바꿀 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압력'으로 바꿀 수도 있다. 모순의 다른 원인인 '안전성'은 이음쇠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이라는 변수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③변수들의 조합 구성

    결국 A전자가 처한 모순 상황은 '강도-부작용', 또는 '압력-부작용'이라는 조합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변수의 수가 많아질수록 조합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④최적의 해결 원리 도출

    트리즈 모델에 따라 '강도-부작용' 조합에 해당하는 여러 해결책 중 A전자는 '셀프서비스'라는 모범 답안을 채택했다. 사례의 경우 이음쇠를 없애고, 추가적인 장치도 하지 않는 것이 해결책이다.

    대신 홈바 자체적으로 강도와 부작용이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A 전자는 연구 끝에 홈바의 문이 홈바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했다.

    너무 쉽다고? 제품 개발 당시 A전자의 한 임원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쉬운 답은 트리즈를 몰라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자 러시아의 트리즈 전문가는 "이렇게 쉬운 걸 왜 다른 방식으로는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는가"라고 반문했다. 트리즈가 모범답안을 제시해 줌으로써 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자금이 줄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드럼세탁기도 트리즈 이론을 활용해 골칫거리이던 소음 문제를 해결했다. 드럼세탁기 내부에는 탈수 때 드럼을 받쳐주는 터브(tub)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부품이 있는데,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요철(凹凸) 형상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요철 모양으로 인해 드럼이 고속 회전할 때 소음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소음을 없애려고 터브를 요철 없이 미끈하게 만들면 강도가 떨어진다. 전형적인 모순 상황인데, 역시 트리즈의 '강도-부작용' 조합으로 문제가 압축된다.

    이 경우 트리즈가 제시하는 해결책 여러 가지 중 삼성전자는 '분할(segmentation)'을 채택했다. 기존 제품에서는 요철이 터브의 전체 면적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터브의 중심부에만 요철을 만들었다. 요철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방법으로 강도도 유지하면서 소음도 줄인 것이다.


    ■불황기 맞아 GE·인텔·삼성전자 등에서 주목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트리즈를 활용하고 있다. 트리즈는 신제품 개발 외에 경영 전략 수립에도 활용된다.

    2004년 초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비용 절감과 시장 점유율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직원을 더 채용해야 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두 가지 핵심 목표가 서로 상충하는 모순 상황에 빠진 것이다.

    MS는 모순의 원인을 '고정된 물체의 무게'(직원 수)와 '에너지 소모'(비용)라는 트리즈의 변수로 치환한 뒤 '폐기 및 복구'라는 모범답안을 받았다. 결국 MS는 직원들을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 고용하고, 급박한 프로젝트가 발생할 때마다 이들을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불황기를 맞아 트리즈 해법은 기업들 사이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신기술 개발을 스피드 있게 할 수 있고, 시행착오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비즈니스위크는 GE와 인텔, P&G, 퓨어셀에너지 등이 트리즈를 이용해 불황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기술 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GE는 소규모 프로젝트팀들이 과제를 수행할 때 트리즈 훈련부터 받게 한다. 또한 이 회사는 차세대 자기공명영상(MRI) 개발을 추진하면서 러시아 출신 트리즈 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컨설팅 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내에선삼성전자가 가장 활발하게 트리즈를 활용하고 있다. 1998년 처음 트리즈를 도입한 후, 2001년 '트리즈 추진사무국'을 설립해 러시아 전문가를 영입했다. 현재 R&D 인력의 50% 이상이 트리즈 교육을 수강했고, 삼성종합기술원 주도로 전 계열사에 트리즈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은 여러 가지 트리즈 기법 중 가장 기초적인 것이다. 트리즈 이론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문제 해결의 유형을 40가지가 아니라 보다 세분화한 '76가지 발명 표준 기법', 문제 해결의 단계(알고리즘)를 더욱 세분화한 '아리즈(ARIZ) 기법'도 있다.

    그러나 트리즈를 너무 지나치게 정형화된 방식으로 활용할 경우, 오히려 창의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데 지장이 될 수 있다. 트리즈는 문제 해법의 지름길을 알려주는 도구일 뿐, 만능열쇠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신민수 시니어컨설턴트는 "트리즈는 기존에 존재하던 해법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푸는 것이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해법은 훨씬 창의적인 연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트리즈' 해결 원리(표2)   

    ▲분할

    대상을 독립된 부분으로 나누고, 조립·분해가 쉽게 한다.

    예: 짬자면. 1개의 그릇을 분리해 자장면과 짬뽕을 동시에 먹을 수 있다.


    ▲부분적으로 다르게

    모든 상황을 똑같이 할 필요가 없다.

    예: 여자 화장실에 남자 소변기 설치. 남자 아이를 동반한 여성 배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나의 물건이 여러 기능을 수행한다.

    예: 등산용 칼은 병따개, 구멍 뚫기, 자르기 등 다용도로 활용된다.


    ▲사전 조치

    문제 해결을 위해 미리 조치한다.

    예: 주름 청바지. 어차피 구겨지는 청바지라면 미리 구기면 어떨까? 이왕이면 예쁘게….


    ▲거꾸로 해보기

    대상의 위아래를 바꾸고, 고정된 부분과 움직이는 부분을 바꾼다.

    예: 뚜껑에 열선이 설치된 전기 프라이팬. 음식이 위아래로 골고루 익는다.


    ▲중간 매개체 활용

    매개체를 활용하여 원하는 특성을 얻는다.

    예: 퍼즐을 이용한 자명종 시계. 알람이 울리면 퍼즐(매개체)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다 맞춰야 꺼진다. 안 일어날 재간이 없다.


    ▲셀프 서비스

    원하는 바를 스스로 수행하게 하고, 피드백을 활용한다.

    예: 오뚝이 화병. 물이 마르면 무게 중심이 바뀌면서 기울어져, 물 교체 시기를 스스로 알려준다.


    ▲복제품 활용하기

    너무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경우 제품을 복제품으로 대체한다.

    예: 자동차 충돌 테스트의 인체 모형. 실제 사람을 대신해 충격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게 한다.


    ▲속성을 바꿔보기

    대상의 특성(크기, 속도, 색깔 등)을 바꾼다.

    예: 온도가 올라가면 색깔이 변하는 주전자. 온도계 없이도 안에 든 물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