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기자의 책 읽어주는 남자] 꿀꿀할 땐 빨간 립스틱 바르거나…

  • 김광일기자

    입력 : 2006.04.19 23:27 | 수정 : 2008.07.09 13:42

    >> 장 필립 투생 ‘사랑하기’
    >> 콜린 러시 ‘벌거벗고 수영하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고 노래한 류시화 시인을 굳이 인용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상대방의 부재(不在)만이 우리를 가깝게 해주고, 곁에 붙어 있으면 오히려 이별을 가속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생 선배들이 읊조렸던 “이 웬수야!”라고 할 때 웬수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벨기에 소설가 장 필립 투생(Jean-Philippe Toussaint)이 쓴 경장편 ‘사랑하기’(Faire l’amour)를 흐린 주말에 읽으시면, 우리가 연인으로 만난다는 것과 그리고 헤어진다는 것의 그 꿀꿀함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해드릴 것입니다. 이 소설은 만난 지 7년 된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입니다. ‘마리’라고 불리는 여자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프랑스의 의상 디자이너입니다. 남자는 백수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가끔 사진 찍는 일을 하는 것으로 묘사는 돼 있습니다만.

    두 사람은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도쿄로 떠납니다. 그들은 이 여행이 사실상 이별 여행이 될 것이란 점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주쿠에 있는 한 호텔에서 새벽 3시쯤 비장한 섹스를 하는데, 동시에 머리 속에는 이런 중얼거림이 떠돕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정사를 나눴던 게 몇 번이었던가? 잘 모르겠지만 자주였던 것 같다. 자주….”(14쪽)

    두 사람은 고통스럽고 불순하고 비극적인 섹스를 통해 고독한 쾌락과 슬픔을 오래된 화상(火傷)처럼 온몸에 친친 동여맵니다. 공격적인 방식으로 벌거벗은 상대의 치골을 마찰시키다가, 그리고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두 발로 상대를 밀쳐내고 등 뒤에 이렇게 외칩니다. “역겨워. 당신이 역겹다고.”

    뿌옇게 김이 서린 백미러를 통해 빗속에 홀로 서 있는 그(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이별을 했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께는, 이 소설이 나른나른한 쾌감 절정의 독서 체험을 제공해드릴 것 같습니다. 저도 연전에 인터뷰한 적이 있는 장 필립 투생의 조용한 목소리가 금세 묻어나올 것만 같은 차분한 문장, 초절정의 관능 미학으로 재현되는 동작들, 그리고 현미경을 들이대듯 한 극사실적 점묘 화법도 압권입니다. 이재룡 교수(숭실대)의 맛깔나는 번역 솜씨는 초특급이구요.
    술꾼이 통음과 해장국을 미리 세팅하듯, 그리고 사우나의 열탕은 냉탕 때문에 존재하듯, 꿀꿀함을 업그레이드한 다음엔 반드시 콜린 러시(Colleen Rush)의 산문집 ‘벌거벗고 수영하고, 중력에 저항하기’(Swim naked, defy gravity & 99 other Essential things)를 읽어보셔야 합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발칙·발랄·멋진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100가지 팁을 알려주고 있는데요, 아마 독자들은 데굴데굴 구르거나 혹은 아하, 라며 무릎을 치거나 두 가지 동작만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우선 “누드와 물은 원초적으로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에” 벌거벗고 수영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차에 치어 죽은 동물처럼 기분이 꿀꿀할 때는 ‘쌔’빨간 립스틱을 바르라 하고요, 뻥! 하고 고급 샴페인 터뜨리기, 땡빚을 내서라도 비행기 1등석 이용해보기, 미친 척하고 무지개색 양말을 신고 출근하기, ‘거기’ 털 깎기, TV코드 뽑아버리기…등을 권합니다.

    아, 저자는 또 ‘전신 마사지 받기’를 권하면서 20대에 최소 한 번 이상 전문가에게 마사지를 받는 건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하네요.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