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작게 100자평 쓰기  블로그 스크랩  이메일  프린트 

기내식 이야기 (2) - 300만원짜리 라면
입력 : 2006.11.20 09:05 05'

▲ 대한항공 보잉747기 일등석
비행기에서처럼 자본주의원칙이 잘 지켜지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만인이 평등하지 않은 곳이 기내입니다. 요즘 일부 항공사들은 퍼스트클래스를 폐지하고 비지니스클래스만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지니스클래스만 해도 별천지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항공요금이 항공사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중/장거리 노선의 경우 일반석과 비지니스클래스,퍼스트클래스의 요금이 1:3:5 정도이지만 항공사를 구분하지 않을 경우는 일등석은 일반석의 10배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비지니스클래스나 일등석 승객한테 서비스가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제 기내서비스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저처럼 일반석에서 쪼그리고 가는 입장에서도 이해를 하게 되는 일입니다.

기내서비스에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은 치솟는 유가때문에 항공사들이 경영압박을 받게되어 그런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석에서는 원가절감운동을 벌이고 비지니스클래스나 퍼스트클래스에는 승객유치를 위해 좌석이나 기내식 등이 점점 럭셔리하게 바뀌고 있으니 말입니다.

▲ 대한항공 보잉747기 2층 (Upper Deck) 비지니스클래스 객실
제가 가장 많이 이용한 노선인 방콕-서울의 야간항공편의 경우 타이항공, 대한항공 모두 자정무렵에 출발하는데 몇 년전만 해도 이륙하자 마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는데 요즘은 기내식 대신 샌드위치나 케익 한 조각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단거리 노선에서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저가항공사들을 중심으로 음료수도 유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앞으로 기름값이 $100을 넘게 되면 국제선에 아예 기차처럼 홍익회가 등장하거나 기내매점을 만들어 도시락이나 음료수를 판매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리 후진 항공사들이라 해도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수준은 승객들을 배고프게 만들거나 목마르게 만들고 있지는 않으니 큰 불편 없이 견딜만 하지만, 비지니스클래스와 일등석의 기내식서비스의 경우 여전히 품격을 지켜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전 보다 더욱 고급화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래 전 이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주인공 Kevin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파리여행에 나서는 장면이 기억이 나실 겁니다. 아이들은 뒤의 일반석에 태우고 어른들은 비지니스클래스에 탑승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내서비스가 제공되자 제공되는 술잔이 비싼 크리스탈제품인 것을 알고 한 남자승객이 승무원 몰래 가방에 넣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 기내에서 담요나 예쁜 그릇 등을 슬쩍 실례하는 것은 우리 나라 승객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말레이지아항공 비지니스클래스 기내식, 그릇이 플라스틱이 아니라 사기그릇을 사용한다.
일반석의 경우 기내식이 제공되는 식기는 대부분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제품이지만 이렇게 비지니스클래스나 퍼스트클래스의 경우는 최소한 유리잔, 사기그릇이 사용되며 일부 항공사들은 고급 도자기나 크리스탈 잔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포크나 나이프 등의 식기도 일반석이 플라스틱이나 조그만 금속제품을 사용하지만 비지니스클래스에서는 일반 고급식당에서 사용하는 크기의 포크나 나이프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미국행 항공편에는 테러방지를 위해 기내식에 제공되는 포크와 나이프가 모두 플라스틱으로 하는 규제를 하는데 비지니스클래스에도 그러는지 궁금하군요.

비지니스클래스 이상의 기내식서비스는 일반 고급식당과 같이 코스별로 제공됩니다. 우선 야채와 연어, 새우 등의 Appetizer 요리가 나오는데 항공사에 따라 따뜻한 수프도 제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Appetizer 접시를 비우면 main 요리를 가져다 주는데 비지니스클래스에는 미리 신청한 요리를 제공하지만 제가 싱가폴항공의 일등석에 탑승하였을 때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을 담은 조리대를 끌고 다니면서 직접 승객이 보고 선택하도록 하는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인요리가 끝나면 이어서 케익과 치즈 그리고 과일 등이 서비스 됩니다. 어제 조선닷컴에 소개된 기사에는 비지니스클래스, 퍼스트클래스의 기내식이 각각 3-4만원, 5-6만원 정도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이상 후하게 쳐줘도 될것 같습니다.

▲ 말레이지아항공 비지니스클래스에 간식으로 제공되는 Satay 요리 - 아무리 간단한 간식이라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서비스되는 경우 반드시 테이블보를 깔아준다.
그런데 땅에서는 품격과는 거리가 먼 아이들 간식거리에 불과한 것이 하늘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무한테나 제공하지 않고 비밀(?)은 아니지만 승무원한테 특별히 주문하면 대접받을 수 있는 라면입니다. 물론 일반석에도 컵라면이 제공됩니다만 비지니스클래스에서는 제대로 끓여주는 라면이 제공됩니다.

제가 몇 년전 아프리카여행을 마치고 카이로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귀국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침 마일리지가 쌓인 것이 있어서 비지니스클래스로 업그레이드 받게 되었습니다. 기내에서 잠깐 눈을 붙힌 후 아침식사가 제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보통 아침식사로 제공되는 것은 비지니스클래스도 오믈렛이나 소시지 등 일반석과 비슷합니다. 저는 입맛도 별로 없어서 식사를 안하겠다고 하니 승무원이 라면이 있다면서 라면을 끓여다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컵라면인줄 알았는데 계란까지 풀어서 라면이 제공되었습니다.

▲ Thai 항공 비지니스클래스 기내식, Appetizer 부터 코스별로 차례로 제공된다.
이때 뒤의 일반석에서 꼬마가 일반석과 비지니스클래스 객실 사이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와서 라면냄새를 맡고 저의 좌석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라면을 먹는 것을 보자 제자리로 뛰어가서 외쳤습니다.

"엄마! 나 라면 먹을래"

"얘가 ..... 비행기에서 라면이 어디있니 ?"

"왜 없어, 나도 라면 줘 ..." 하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승무원, 여기 라면있어요 ?"

"손님, 죄송합니다만 라면은 없는 데요."

"거 봐라, 비행기에 라면이 어디있니 ?"

"아냐, 내가 저기 앞에 어떤 아저씨가 라면먹는거 봤단말야 ..."

뒤에서 난리치는 소리를 들으니 라면이 목에 넘어가지를 않았습니다.

잠시 아이가 보채느라 시끄러워지자 사무장님이 아이 부모한테 가서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라면은 비지니스승객한테만 제공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라면 한 그릇이 얼마나 된다고 그까짓 라면 하나 가지고 애를 울려요, 내참 치사해서 ......"

"죄송합니다, 손님"

"내 참 더러워서, 내 다시는 대한항공타나봐라 !"

"??? 카이로에서 한국오는 비행기는 대한항공 밖에 없는데 ???!!!"

잠시후 라면그릇을 거두러 온 승무원한테 물어 보았습니다.

"왜 라면이 재고가 없었나 보죠 ? 내가 그 꼬마하고 나누어 먹을것을 그랬나 ?"

"손님, 라면값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석 손님한테 라면을 일일히 끓여 드릴 수가 없습니다. 컵라면이라면 어차피 커피 몇잔 끓일 물을 아끼면 되지만 식당처럼 가스버너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

그렇군요. 라면끓일 물 보다는 열원(heat source)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 한그릇 제대로 못 마신다는 속담이 있듯이 라면을 정식메뉴에 올리면 400명 승객중 360명은 아마 라면을 선택할 테니 비행기 안에서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전에도 유럽항공사들이 일반석에서 일본제 컵라면을 제공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유럽항공사에는 한국인 승객이 적어서 가능할테고 한국승객이 많은 국적기의 경우는 컵라면에 부을 끓는 물조차 문제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카이로왕복요금이 일반석과 비지니스클래스가 약 300만원의 차이가 있으니 비행기표값에 300만원을 더 쏟아 부어야 비행기에서 라면 한그릇을 먹을 자격이 주어지는 셈입니다.

▲ Air France 일반석 기내식, All-in-one 기내식종류와 상관없이 김치는 기본으로 제공되어 좋다.
그런데 비지니스클래스나 퍼스트클래스를 이용할 때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웬만큼 영어실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일반석과는 달리 비지니스클래스의 서비스에는 승객의 선택폭이 넓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마일리지를 이용하여 Northwest 비지니스클래스로 미국여행을 할 때의 일입니다. 저는 대학교입학시험에서 영어시험을 보고 난 후에 재수를 할까 2차대학을 갈까 걱정할 정도로 영어실력이 형편 없었지만 외국여행을 자주 하면서 실용영어는 어는 정도 알아 듣는다고 착각을 하게 되었는데 무척 당황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승무원들의 인사부터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냥 "How are you ?" "Welcome" 등의 교과서에 나오는 인삿말만 하면 좋겠는데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기면서 상냥하게 말을 건네오는데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면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답니다.

그리고 좌석에 앉은 후 승무원이 "기내용 슬리퍼를 드릴까요 아니면 양말을 드릴까요 ? "하고 물어보는데 그때만 해도 비지니스클래스에서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리가 없었으니 sleeper 와 socks 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몇번 말해도 못 알아 들으니 옆에 앉은 미국승객이 먼저 주문해서 받는 것을 보고 그 말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비지니스클래스에서는 기내용슬리퍼를 기본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좋더군요.

그 외에 비지니스클래스에 탑승하면

"이륙 후에 음료수는 어느것을 마실래 ?"

"식사시간에 술이나 음료수는 무엇으로 할거니 ?"

"와인은 .... 어느 것을 좋아하니 ?"

등 알아서 주면 좋겠건만 일일히 물어보면 환장할 노릇이기도 합니다.

이제 기내식시간에 또 당황하게 됩니다.

일반석에서는 빵을 주는대로 먹으면 되는데 무슨 빵을 원하느냐고 묻는데 빵이름을 알지 못하니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크로와상과 갈릭브레드 두 가지이니 비지니스클래스로 여행할 때에는 크로와상만 먹을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다행히 메인요리를 어떻게 해 줄까 하는 질문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

▲ 중국 동방항공의 샹하이-방콕 야간항공편에 일등석에만 제공되는 간식
비지니스클래스 !

몸은 편하고, 혀는 즐겁지만

미국항공사를 이용할 경우 머리는 좀 아프답니다. (영어할때만)

관련기사
기내식 이야기 (1) - Beef or Chicken ?   [06/11/13 12:45]
기내식 이야기 (3) - 굶어도 좋으니 태워만 줘요   [06/11/27 09:08]

100자평 쓰기  블로그 스크랩  이메일  프린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