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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한국창작오페라단의 '한울춤'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12.13 08:37 09'

’민족오페라’라는 장르 명칭이 생길 정도로 요즘 우리나라의 창작 오페라는 지사적(志士的) 이미지의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민족 자긍심과 애국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순신, 권율 등의 무장(武將)이 오페라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아, 고구려 고구려’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려는 의도로 오페라를 작곡하기도 한다.

민족적 소재를 다루는 것 자체는 물론 나쁘지 않지만, 관객에게 현대음악과 첨단 연극의 즐거움을 동시에 일깨울 가능성을 지닌 창작 오페라 분야가 온통 ’민족’에만 헌신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닌 듯하다.

최근 몇 년 간 이런 ’민족오페라’ 성격의 공연이 상당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국창작오페라단의 국악오페라 ’한울춤’ 공연(12월7일-8일 고양어울림극장)은 새로운 기대를 갖게 했다.

이 작품의 대본과 작곡을 맡은 이종구 단장(한양대 작곡과 교수)이 우리 전통 예술의 근본인 ’악가무’(樂歌舞) 형태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분야에 비중이 치우치지 않고 음악과 춤, 극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형태인 만큼 ’국악오페라’라는 명칭이 꼭 적합한 것은 아니겠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그렇게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극의 내용과 필연적 연관이 없더라도 무조건 발레를 삽입했던 한 때의 서구 오페라 전통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승무와 살풀이 같은 최고의 전통춤이 극의 전개에 필연적 요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한울춤’은 일제 강점기 식민화 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괴되는 전통 예술을 지켜낸 한성준 선생에게 바치는 오마쥬이기도 하다.

동학에 입도하여 춤에 민중의 정신을 담아낸 불세출의 춤꾼이자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을 가능케 한 명고수 한성준. 그러나 역사적 인물의 정신세계를 음악극으로 담아내려 할 때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이 공연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우선 대본이 한성준보다 그의 친구이자 항일투사로 등장하는 강한울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점이 아쉽다.

더구나 이 공연에서 관객을 가장 몰입시킨 장면은 2막에서 소리꾼 이덕인이 강한울 역을 맡아 동학 민중봉기 과정을 판소리로 들려주는 부분이었다.

첩첩이 겹쳐진 능선들을 배경으로 동학군의 승리와 관군의 반격 장면들을 보여준 무대는 사건의 자초지종을 북 장단에 맞춰 구성지게 읊어가는 강한울의 소리와 더불어 벅찬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판소리와 무대 연출로 전달되는 동학 민중봉기의 내용에 눈과 귀가 집중되다 보니 ’명고수’ 한성준을 부각시키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전체적으로 춤의 비중이 너무 낮았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평소라면 춤 자체만으로도 절절한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김진환의 승무와 임응희의 살풀이가 이 공연에서는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등장해 춤에 제대로 몰입하기도 전에 관객의 감정선이 끊기고 말았다.

처음부터 공연시간 단축에 너무 신경쓰지 말고, 극 전체에서 의미상의 핵심을 이루는 이 춤 장면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해 그들을 제대로 살려내었더라면 더 깊이 있고 설득력 있는 무대가 되었을 것이다.

양진모의 지휘로 용인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이종구의 음악은 개성과 현대성으로 승부하는 대신 전통 가락의 뿌리 위에서 양악과 국악, 양악기와 국악기들이 어떻게 세련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었다.

양악적 화성 위로 날카롭게 뻗어나오는 해금의 음빛깔은 귀에 도드라지지만 따로 놀지는 않는다. 1막에서 4막까지 국악과 양악의 화합은 조금도 거슬림이 없다.

그러나 각 장면의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 음악은 관객의 기대지평을 초월하는 의외성의 매력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소프라노 김성은은 이 공연에서 강한울의 연인이자 예인 지화선 역을 맡아 호소력 있는 가창과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공연 후에 “이제까지 서양 오페라 배역만 노래해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낯선 형식의 음악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츰 가슴속으로부터 음악에 동화되는 나 자신을 느꼈고, 공연 며칠 전부터는 지화선이라는 배역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슬픔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많은 창작오페라가 세계 무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다른 역사와 그로부터 비롯된 독특한 민족 정서를 세계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로 치환하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한 작품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 하다 보면 어떤 부분이 진정한 우리 전통예술의 색채인가를 알아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 공연 2막의 소리 장면처럼 전통의 본색(本色)을 일관성 있게 살려내는 것이 결국 유용한 기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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