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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국립오페라단 '호프만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11.24 13:34 30'

자주 공연되지 않는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마음은 무척 조심스럽다.

제목조차 익숙하지 않은 작품에 관객을 불러모으는 것부터 수월치 않은 일이거니와 객석이 가득 찼다 하더라도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관객 역시 작품을 잘 모르다 보니 실수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멋진 아리아나 중창이 끝나도 주위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박수를 보내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인지 자크 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22-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4일 공연 없음)를 무대에 올린 국립오페라단은 연극계의 베테랑 연출가 이윤택을 내세워 ’통념을 깨는 연출’을 승부수로 내걸었다.

관객이 이 오페라의 음악에 익숙하지 않아 공연에 몰입하지 못한다면, 시선을 사로잡고 감각을 일깨우는 연출과 무대로 관객을 흡인하겠다는 자세였다.

프롤로그 무대가 대학생들이 모이는 독일의 술집이 아닌 것이 우선 반가웠다. 원작대로 연출되었다면, 음악의 희극적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이 첫 장면이 우리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기 2205년. 오염으로 인간이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내려다 보는 우주 정거장 카페’. 이런 SF식의 공간 설정은 영화에서는 흔하디 흔한 것이지만 오페라에서라면 아직은 새롭고 신선하다.

더구나 기발하고 획기적인 오페라 연출을 만나기 어려운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즐거운 충격일 수도 있다.

환상적인 푸른 조명과 영상을 동원한 미래주의 무대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쳤고, 합창단이 입은 ’스타워즈’ 스타일의 의상은 패러디의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대본의 번역문을 우주공간이라는 무대 설정에 맞춰 원문과는 다른 내용으로 재치있게 바꾸어 놓은 점도 돋보였다.

그러나 이윤택의 연출은 이 프롤로그의 신선함을 끝까지 끌고 가지는 못했다. 연출 방향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대신 가능한 한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담아내려는 의욕을 앞세운 탓이 아닐까 싶다.

우주정거장에서 시작했던 이야기가 햇살 찬란한 꽃밭 속에 늘어선 그리스 여신(뮤즈)들과 함께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도입부에서 빛을 발하던 무한대의 상상력이 구태의연하고 도식적인 해석의 굴레에 묶여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작가인 주인공 호프만이 경험하는 세 번의 사랑(예술가, 창부, 천진한 소녀와의 사랑) 이야기들 역시 전체적으로 볼 때 과거의 전통적 연출 방식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압도적인 프롤로그 무대, 멀리서 무대 전면으로 다가오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 1막의 눈부신 꽃밭, 붉은 무대와 붉은 조명으로 홍등가의 이미지를 살린 2막, 3막에서 인조인간 올랭피아와 그를 흉내내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합창단의 익살스런 연기 등 흥미로운 볼거리는 가득했다.

그러나 배우들(성악가들)의 움직임과 신체훈련에 관한 연출가의 언급을 읽고 기대했던 ’연기의 변화’는 이번 공연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유명한 ’뱃노래’가 나오는 2막에서 배경 인물들(합창단)은 끊임없이 팔다리를 일렁이며 몸을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그 움직임이 전혀 관능적인 분위기를 전해주지 못했다.

남자들로 하여금 그림자와 영혼까지 팔게 할 만큼 뇌쇄적인 창부 줄리에타 역시 연기로는 관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 때문에 호프만이 한순간에 격정적으로 줄리에타에게 빠져드는 것이 결국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음악적인 면에서 공연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전 막에 걸쳐 거의 쉬지 않고 노래해야 하는 주인공 호프만 역의 테너 박현재는 마지막까지 안정적인 음색을 유지하며 열정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시인 역할을 탁월하게 해석해 냈다. 이보다 적합한 호프만을 찾기 어려울 만큼 흠잡을 곳 없는 유려한 가창이었다.

다만 격정이나 분노를 성악적으로뿐 아니라 표정과 신체의 연기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린도르프, 미라클, 코펠리우스 역을 맡은 함석헌은 ’마탄의 사수’의 카스파르 역에 이어 다시 한 번 악마적인 역할에 꼭 들어맞는 놀라운 연기력을 과시했다. 특히 여주인공 안토니아를 끝없이 노래부르게 해 결국 죽게 만드는 ’악의 화신’ 닥터 미라클 역에서 풍부한 성량과 정교한 연기가 진가를 발휘했다.

장 폴 프넹이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화성과 선율이 풍요로운 오펜바흐의 이 오페라를 격동과 절제의 조화를 추구하며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신체의 움직임이 많이 요구되는 이번 공연의 연기에 다소 부담을 갖는 기색이 보였으나, 가창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훌륭했다.

이번에는 연습기간이 짧은 탓에 충분히 성공적이지 못했겠지만, 오페라 가수들과 합창단의 밀도있는 연기, 움직임 훈련은 더욱 자연스럽고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위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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