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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호 선임기자의 정치분석] ‘계륵 대통령’
옹호하던 목소리 대신 “부담된다”
與 “남은 1년 반 어쩌나…” 한숨만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여당에서조차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 “북한 설득에 미국이 제일 실패했다”고 말한 이종석 통일부장관을 엄호한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여당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여당 의원들은 이 장관에게도 짜증을 내고 노 대통령에게도 불만이다. 그러나 비난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여당의 난감한 처지는 “그렇다고 여당에서 이런 비난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문희상 의원의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여당에 노 대통령은 함께 가기엔 너무 부담되고 그렇다고 쉽게 헤어지자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존재이다.

2년 전 대통령 탄핵을 심판했던 민심은 엊그제 재보선에서 그 시절 그 탄핵주역을 당선시킬 정도로 180도 바뀌었다. 민심의 이런 추이를 여당 의원들도 뒤좇고 있으나 아무래도 집권당인 탓에 걸음걸이가 늦다.

노 대통령이 이 장관을 옹호하면서 “북한에 목 조르기라도 하란 말인가” “미국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안 되나”라고 한 발언은 지난 대선 때의 “그러면 마누라를 버리란 말이냐” “반미면 어때?”란 발언을 연상시킨다. 여당 의원들은 바뀌지 않는 대통령의 말투를 못마땅해한다. 한때 대통령의 정치고문으로 불린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정권이) 언어의 비용을 너무 비싸게 치르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바로 대통령의 그 말투를 “단 한마디로 공수(攻守)를 뒤바꿔버리는 타고난 언변” “말에선 DJ보다 한 수 위”라고 칭송했던 3년 반 전의 여당을 돌이켜 보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든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승리 이후 외교안보 전문가들을 차례로 만났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빠짐없이 “반미면 안 되는 이유가 뭐죠? 무슨 불이익을 받게 되죠?”라고 물었다. 모임 후엔 참모들에게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는 전문가가 아무도 없더라고 말했다. 그러곤 이런 얘기를 덧붙였다고 한다. “작은애는 늘 큰애의 가방을 대신 들어줬다. 그런데 어느날 작은애가 큰애 보고 ‘네 가방이니까 네가 들어라’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애가 잠시 멍하니 작은애를 바라보다 아무 소리 없이 가방을 들고 가더라. 모두들 오랫동안 반미면 손해 본다는 인식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참모들은 이런 뒷얘기들을 자기들끼리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반미면 어때?’ 같은 탁월한 언변, 그 속에 담긴 노 대통령의 식견을 자랑스러워했다. 윤태영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은 작년 여름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올렸다. “대통령은 세련된 외교보다는 솔직한 외교를 추구했다. 아쉬운 것은 아쉽다고 이야기하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달라고 이야기했다. 국제무대에서 대통령의 그 솔직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외국의 지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와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그것은 세련된 매너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직은 언제나 최선의 정책이었다.”

지금 여당에서 이런 찬사를 접하는 것은 정권 초기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의원들을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여당 인사들은 이 정권의 대미 정책을 더 이상 노 대통령의 무용담으로 떠올리지 않는다.

정권 초기 노 대통령 곁에 있었다는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미국에 대해 그렇게 의기양양해하던 노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는 곧바로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말을 쏟아내고 귀국해선 다시 ‘반미면 어때’ 파들을 의식, 말을 바꾸는 과정을 그때 벌써 다 지켜봤었다”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노 대통령의 외교는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란 야당의 힐난에 반박하기는커녕, 국회에서 함께 당국을 몰아세우는 게 요즘 여당이다.

이 정부 외교안보팀에 직접 몸담았던 인사들의 비판은 더욱 신랄하다. 한 전직관리는 “정권 초기 정권 핵심들과 얘기해보니 이들은 미국에 줄 것은 어쩔 수 없이 주더라도 순순히 줘선 안 되고 고통을 느끼게 한 뒤 줘야 한다는 인식이더라. 그러니 미국 사람들 입에서 ‘이게 무슨 동맹이냐’는 말이 안 나올 수 없고, 한미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분야만이 아니다. 내정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다” “별놈의 보수” “호남분들이 내가 좋아서 찍었겠나. 한나라당이 싫어서 찍은 것이지” “강남불패라는데 대통령도 불패로 간다” “매일 강남사람들과 밥 먹고 나온 정책으론 강남 집값 못 잡는다”란 거친 말투를 썼다. 물론 그 거친 말투는 말투로만 남지 않고 고스란히 정책에 반영됐고, 나라가 이리 갈리고 저리 찢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라 분위기가 이러니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요즘 “남은 1년 반을 어쩌나?”라고 묻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대통령이 여당에서도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대통령을 대신해서라도 중심을 잡아줘야 할 여당 의원들마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 상황이니 1년 반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면 잘못 끼운 단추를 풀어 처음부터 다시 매야 하나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핵심세력에게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체념의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해 있다. 그런 체념의 분위기를 타개해 정권과 나라를 연착륙시키고 국민의 불안을 덜어줄 1차적인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앞으로 국회에서 대통령과 여당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의 단 한마디에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준호 선임기자 jhhong@chosun.com
입력 : 2006.07.28 00:21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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