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모래가 다 떨어지면 끝나는 게 우리 삶 같아.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꼭 끝이 있는 법이지.” “왜 반대를 하면 안 되죠? 반대를 용납 못하면 독재라고 배웠는데요, 아닙니까?” 어느 영화의 대사일까? 바로 한국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사다. 1995년, ‘귀가시계’라고도 불렸을 만큼, 이 드라마를 보려고 직장인들이 일찍 귀가해 서울 시내가 텅 비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드라마 ‘모래시계’는 당시 시대의 부조리를 두 남자와 한 여인의 엇갈린 우정과 사랑을 통해 조명했다. 거대한 근현대사의 물줄기와 개인들의 인생사를 절묘하게 버무린 시나리오와 빼어난 연출, 그리고 최민수·박상원·고현정 등 당대 톱스타들의 명연기가 한국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나 지금 떨고 있냐”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같은 명대사도 강렬한 존재감을 확인시켜준다.

이 ‘모래시계’가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모래시계’를 소환한 이들이 20~30대 젊은 층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왓챠에서 ‘모래시계’를 시청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MZ세대였다. 이들은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1995년에는 너무 어려 기억조차 없거나, 혹은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았던 이들이다.

이뿐이 아니다. 올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소환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도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중경삼림’(1994년)은 27년 전, ‘타락천사’(1995년)는 26년 전 작품. 기성세대들에게야 ‘모래시계’는 추억의 드라마고, 왕가위 작품들도 과거의 영화겠지만, MZ세대에게 ‘모래시계’는 전혀 다른 ‘새로운 드라마’고, 왕가위 영화 역시 이제껏 본 적 없던 ‘신선한 영화’인 셈이다. 나 역시 MZ세대로서 이런 올드 콘텐츠의 새로움에 매료되었다.

수년 전 ‘뉴트로’라는 말이 크게 화제였다. 복고적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이 열풍이었다. 영국의 록밴드 퀸의 일대기를 그린 ‘보헤미안 랩소디’가 큰 인기를 끌면서 뉴트로 열풍은 정점을 찍었다. 이제 MZ세대들은 과거의 것을 재해석한 콘텐츠를 넘어 과거의 콘텐츠 자체를 직접 즐기고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MZ세대들에 의해 20세기의 올드 콘텐츠들은 21세기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