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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개입"
뒷받침하는 근거 사료 일 국회도서관서 발굴

▲ 미봉책을 포기하고 "결단의 방침"을 채택하도록 (이토에게) 강하게 권유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서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 총리 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각료들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발굴됐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8일로 꼭 110년을 맞는다. 명성황후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인 다큐서울 정수웅 대표는 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요시카와(芳川顯正) 사법상(司法相·법무장관)의 1895년 6월20일자 편지를 공개했다. 무쓰(陸奧宗光) 외상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요시카와는 이노우에 주한공사에게 “(이토 총리에게) 미봉책은 단연히 포기하고 ‘결행의 방침’을 채택하도록 강하게 권유하라고 말했다”며 “이쪽의 희망대로 움직여갈 것 같다”고 쓰고 있다.

일본 근대사 연구자인 고마쓰(小松 裕) 구마모토대 교수는 “‘미봉책’은 조선 정부에 대여금을 줘서 회유하려는 이노우에의 방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결행의 방침’은 무단적인 수단으로서의 해결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정부의 개입을 부인해왔고, 국내 학계에서도 당시 주한 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단독 범행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주도설 등이 제기돼왔을 뿐이다. 때문에 당시 일본 최고 지도자였던 이토 등 각료의 개입을 암시하는 이번 사료는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이 서한에 대해 5일 “사법상과 외상이 편지로 이런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내각 차원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의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토의 시해사건 관여를 입증하는 자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입력 : 2005.10.05 20:03 55' / 수정 : 2005.10.06 06: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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