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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천국 상하이 샹양시장 "사람 빼고 다 가짜"
870여개 점포에 세계 유명브랜드 없는 게 없어, 롤렉스시계 등 한국산 위조명품도 활개
중국 당국 형식적 단속, 1회성 행사에 그쳐… 상인들 보안요원 앞에서 버젓이 호객행위

세계 유명브랜드를 모방한 ‘짝퉁’(가짜 명품)이 중국 상하이(上海) 중심가에서 활개치고 있다. 상하이 시내의 번화가 한가운데에 있는 샹양시장(襄陽市場)이 짝퉁의 활동무대다. 평일 5만명, 주말 10만명의 내외국인이 찾는 이 시장에서는 ‘진짜는 하나도 없고 가짜는 다 있다’고 할 정도로 온갖 종류의 위조상품이 팔리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단속할 의지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월 20일 오후 샹양시장에선 호객꾼들이 명품 시계·가방·의류 등을 사라며 외국인 관광객들을 따라붙었다. 이들은 기자에게도 “친구, 프라다 가방” “시계, 롤렉스” 등 한국말을 하며 접근했다. 카르티에 시계, 버버리 코트, 몽블랑 만년필, 에르메스 스카프, 페라가모 넥타이, 나이키 운동화, 던힐 라이터…. 7300평 면적에 870여 점포가 입주한 이 시장은 세계 각국의 유명 브랜드 상품은 없는 게 없다. 상점 입구에 주렁주렁 내걸린 남녀 팬티 등에도 캘빈클라인 등 명품 상표가 어김없이 붙어있다. 물론 모두 가짜다. 예컨대 핸드백이나 손지갑, 가죽가방은 브랜드와 상관없이 흔히 ‘똑딱이’라고 하는 자석식 단추가 붙어있는데 빗금이 새겨져 있고 가로가 긴 육각형 모양으로 모두 동일하다. 상표와 상관없이 특정한 공장에서 대량생산한다는 방증이다.


모조품인 만큼 진품과 비교가 안되는 가격에 판매한다. 게다가 흥정하기에 따라 주인이 처음 부르는 가격의 5분의 1 이하까지 가격이 떨어진다. 기자에게 처음 600위안(약 7만8000원)을 부르던 루이뷔통 핸드백은 200위안(2만6000원)까지 내려갔다. 불가리 남성시계는 480위안(6만2000원)에서 110위안(1만4000원)으로, 몽블랑 만년필은 95위안(1만2400원)에서 20위안(2600원)으로 떨어졌다. 골프용품 판매점에선 대만산 가짜라는 캘러웨이 X18 풀세트에 골프가방, 골프화까지 끼워서 1600위안(20만원)이 시작가격이었다. 홍콩산 모조품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신사복은 850위안(11만원)부터 흥정이 시작된다.

호객꾼 손에 이끌려 들어간 가죽제품 가게에서 “물건이 다양하지 않다”며 돌아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여주인이 “여기 많이 있다”며 진열장을 옆으로 밀고 뒤에 가려져 있던 비밀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짜 명품 핸드백과 여성용 가방이 가득 쌓인 창고였다.

옆 가게에선 카르티에 시계를 만지작거리며 “가짜라 금방 고장나는 것 아니냐”는 태국 관광객에게 “한국에서 만든 것이라 품질이 최고”라며 떠안기고 있었다. 실제 샹양시장 인터넷 홈페이지엔 점포마다 각종 명품시계를 소개하면서 ‘제조지:한국’이라고 표기해놓았다. 한국 관세청 관계자는 “1980~1990년대 국내에서 가짜 명품시계를 만들던 위조업자들이 몇 년 전부터 중국에 공장을 세우고 위조품을 만든다”며 “샹양시장에서 한국산이라고 파는 시계는 대부분 이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가짜 명품시계는 여성용 핸드백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즐겨찾는 품목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상인들은 한국인에겐 절대로 한국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위조시계를 중국에서 외화를 써가며 사가지고 한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셈이다. 상하이 주민들은 “샹양시장 물건은 가격이 싼 것 같아도 품질이 나쁘고 금방 고장나 결국은 돈 버리는 것”이라며 “상인들이 가짜를 팔면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해서 샹양시장에선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시장 입구에는 상하이시 공상국(工商局) 명의로 ‘2004년 10월부터 샤넬 등 40가지 유명 브랜드 위조품을 판매하면 처벌한다’는 공고가 붙어 있다. 그러나 시장 안에선 해당 40가지 브랜드 모조품이 전부 팔리고 있다. “모조품을 팔거나 사면 단속한다”는 내용의 경고 방송이 영어와 중국어로 나오지만 상인도, 손님도, 시장을 감시하는 보안요원들도 한 귀로 흘린다. 시장 안팎에서 호객해 시장 주변 뒷골목의 아파트 등지에 차린 불법 점포로 유인하는 호객꾼 수백 명 역시 보안요원 눈앞에서 손님을 잡아끌지만 아무 제지도 받지 않는다. 이들을 따라 시장 바깥의 아파트에 들어가면 ‘이 방은 의류, 저 방은 가방’ 하는 식으로 집 전체가 모조 명품으로 가득 차 있다. 불법 점포는 구불구불한 뒷골목으로 이어진 밀폐된 공간에 있기 때문에 손님이 불안감을 느끼는 등 심리적으로 위축돼 일방적으로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시장 측, “한국도 짝퉁 팔지 않느냐”

샹양시장은 상하이의 부동산개발업체 4개사가 공동 설립했고, 홍콩 자본이 토지임대료 20억위안(2600억원)을 투자해 2000년 5월 문을 열었다. 당초 현재 시장터 부근에서 장사하던 짝퉁 상인들을 양성화해 위조상품 판매를 없애려는 취지였다는데, 결과적으로 짝퉁 판매를 공인해주는 셈이 됐다. 가짜 명품을 사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상하이에 오는 한국 관광객도 이곳에서 적지않게 짝퉁 쇼핑을 한다.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은 “가짜 명품을 사가지고 귀국하다 적발되면 압수해 폐기처분하며, 수량이 많은 경우는 상표법 위반으로 처벌한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시장 측과 점포 재계약을 하는 매년 5월이면 상하이 언론에 샹양시장 이전·폐쇄를 거론하는 기사가 실린다. 가짜 상품을 조직적으로 제조 판매하는 소굴이라는 국내외 비판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외국 상품의 브랜드 등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면 무역보복을 당할 수 있게 돼, 샹양시장 문제는 처리가 더욱 시급해졌다. 중국은 과거 상표 모방을 거의 처벌하지 않았으나 WTO 가입 이후 외국기업 등이 등록한 상표의 제품을 상표권자의 허가없이 판매하거나 모조품을 만들어 팔면 처벌하는 법규를 신설했다.

그러나 샹양시장은 실제로는 요지부동이다. 시장 관계자는 “현재의 위치를 대신할 장소를 찾기도 마땅치 않고 시장에 투자한 기업의 투자금 회수 문제도 걸려 있어 이전이나 폐쇄는 힘들지 않겠냐”고 말했다. 시장 이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상인들의 반발도 적잖다고 한다.

상하이시 역시 사실상 수수방관이다. 상하이시는 지난 8월 18일 샹양시장뿐 아니라 상하이 시내 전역에서 짝퉁 단속을 벌여 2419개 점포를 적발하고 위조 명품 8890점을 압수했다.

그러나 이런 단속은 1회성 행사일 뿐이다. 시장관리업체 주임인 주(朱)모씨는 “현재 모조명품은 팔지 않으며 간혹 나올 경우 계속 단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 전체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서울에 가보니 동대문 남대문에도 가짜가 있더라. 샹양시장은 국제적인 대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다양한 측면의 하나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일부 현지 언론도 “샹양시장은 법률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안되며, 이미 상하이의 여행명소로 자리잡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상하이시 관계자는 “샹양시장을 당장 전면적으로 손대기는 어렵지만 2010년 세계박람회 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정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상하이= 이동혁 조선일보 특파원 dong@chosun.com
입력 : 2005.10.08 13:20 34' / 수정 : 2005.10.08 13:2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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