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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반도 역사전쟁

▲ 윤평중 한신대 교수
노 대통령의 돌출 발언이 다시 우리들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국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대통령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습관적 설화(舌禍)의 와중에 정치공동체의 운명을 가를 중대사가 망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흥분과 망각의 악순환은 위기의 순간에 대한 감수성을 마비시킨다. 북핵 실험 이후 우리사회의 혼란이 전형적인 사례다. 태풍처럼 우리를 덮친 북핵 위기지만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핵 실험은 우리의 명운을 좌우할 한반도 역사전쟁의 실체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한반도 역사전쟁은 1948년 출범한 두 개의 주권국가에 의해 본격화되었다. 여기서 ‘역사전쟁’이란 한반도 전체를 두고 다투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운명적 헤게모니 싸움을 지칭한다. 남북의 두 국가가 지향한 헤게모니는 군사력을 포함한 물리력과 남북 정치 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주민 동의의 합계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전쟁은 38선의 대치 상황을 중·소의 후원을 업어 군사적으로 돌파하고자 한 북한의 현상 변경 시도였던 것이다.

세계적 냉전구도의 전시장이었던 한반도의 지정학을 무시한 북의 군사적 모험주의는 한민족의 총체적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일방이 무력으로 한반도 전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망상이었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고 지구적 냉전체제도 해체되었지만 한반도에서 물리력만에 의한 헤게모니 획득이 불가능하다는 근본적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핵 보유국 북한의 출현도 이 사실을 변경할 수는 없다. 또 한 번의 전면전은 핵전쟁으로 비화할 것이고 이는 전쟁 당사자 모두의 절멸(絶滅)을 초래할 것이므로 제2의 한국전쟁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북 역사전쟁, 즉 헤게모니 싸움에서 전면적 군사 충돌 가능성이 배제되면 남는 것은 각자의 정치 권력에 대한 남북 주민들의 동의지수의 경쟁이다. 이 점에서 북한은 출범 시 친일 잔재 청산과 농지 무상 몰수, 무상 분배 등을 근거로 정통성의 우세를 자임하였다. 이에 비해 남한은 친일파 척결이 무산되었고 토지 분배도 불철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민에게 땅을 돌려준다는 북의 농지개혁은 시늉에 불과했고 국유제로의 전환은 땅 주인을 지주에서 국가로 변환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6·25 직전 완수된 남의 농지개혁은 온건하지만 더 내실 있는 것이었다.

북에서 친일파를 척결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련 군정이 이식한 소비에트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세력도 함께 일소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싹 자체가 거세되고 말았다. 해방 정국의 북한에서 가장 주민의 신망을 얻은 정파는 김일성 일파가 아니라 조만식이 이끄는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었지만 그는 군정 당국의 회유에 끝까지 저항해 숙청당한다. 결국 북한 출범 시 헤게모니가 남한에 비해 우세했다는 것은 대부분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

민주정치시대에 국가 헤게모니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궁극적 잣대는 이성적 주민들의 자발적 동의일 수밖에 없다. 북한 50년사는 인민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동원한 혹독한 탄압과 세뇌의 역사로 얼룩져 있다. 이 점에서 북의 유일 지배체제는 반민중적이며, 김 부자(父子) 정권은 반인민적이다. 반면 남한 현대사는 우여곡절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정치 권력의 정통성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가 꾸준히 확장되고 심화된 역사인 것이다.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이룩한 이런 성취는 북핵도발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남북 대화와 교류의 시대도 바꾸지 못하는 한반도 역사전쟁의 실상인 것이다.

윤평중 · 한신대 교수 · 사회철학
입력 : 2006.11.29 18:4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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