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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선비정신과 론스타 사태

▲ 이두아 · 변호사
조선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는 드라마를 통해 신분제도의 희생양인 노류장화가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의 예인(藝人)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의 치열하고 풍류 어린 삶은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을 매혹한다. 그러나 황진이와 인연을 맺었던 남자들은 다르다. 분명 그 시대 최고의 남성으로 현대의 메세나 기업가들처럼 예인을 우대하고 후원해줄 만큼 재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돈 문제에 초연한 것이, 경제활동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사대부 최고의 미덕이라는 점을 수시로 강조한다. 그랬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돈을 추악한 물건이라고 생각했기에 상업 활동을 규제하는 법규를 만들고 상인과 기업가의 출현을 막았다. 심지어는 돈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을 수치로 여겨 접시에 얹어온 동전을 젓가락으로 집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는 국내 경제의 발전 및 외국인들과의 상거래를 철저히 금지했고, 그 당연한 귀결로서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과업을 일찌감치 수행하지 못했다. 조선은 결국 국제사회의 후진국이자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조선시대 500년을 관류하는 선비정신에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자체가 하나의 경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21세기의 현대사회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집단이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경영해 나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 검찰, 법원, 미국 펀드가 사활을 걸고 정면충돌 중인 ‘론스타와 외환은행 사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유난히 기업가나 경제 관료들을 피고나 피고인으로 한, 민·형사 소송들이 많이 언급되는 것은 왜일까? IMF 이후 한국을 덮친 경제 불황을 외국 기업의 탓으로 돌리고, 검찰이 이들과 이들 매판(買辦)자본에 부역한 관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른다는 소문과 풍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을 외국 기업에 파는 데 관여한 사실 자체를 죄악시하는 풍토를 다시 보자는 말이다. 외국 기업이라도, 위법행위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법률가들의 사고가 상업을 천시하거나 민족주의라는 틀에 갇혀 균형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지식인, 특히 법률가들이 기업가들의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고 별다른 가치도 부여하지 않으며, 기업인들을 중인(中人) 집단의 현대판에 다름 아니라 생각하는 국가에는 미래가 없을 터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업가들은 지식인들이나 법률가들 아래에 놓이는 존재가 아니다. 피터 버거의 지적처럼, 지식인들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제공하지 못했던 권력과 특권을 사회주의 사회가 부여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착각과 환상’에 이끌려 사회주의 사회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대의 법률가들 또한 지식인들의 ‘반(反)자본주의적인 사고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지난주 작고한 밀턴 프리드먼이 명쾌하게 분석한 것처럼, 신분 인종 종교 국적 성별 출신지역을 먼저 따진 후 파는 사람이 정한 기준들에 맞아야 비로소 무엇을 살 수 있는 사회보다는,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사회가 오히려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사회다. 어느 경영학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 국내의 고용기회를 빼앗은 국부유출이라고 비판한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면, 국부 증가, 수출 증대, 고용 창출 면에서 국내 경제에 공헌한 이야기는 쏙 빼고 오히려 한국 경제로부터 단물을 뽑아 간다는 비판만 한다.”

여전히 다국적 기업을 매판자본이라 지칭하고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가지고서 스스로를 조선시대 ‘선비정신’의 소유자임을 자부하는 일부 법률가와는 달리 ‘론스타 사태’ 관련 법률가들은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임을 깊이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글로벌화된 경제 구조에 대한 인식을 갖추고서 이 사건을 자유시장경제체제의 법률가로서 판단하리라 기대한다. 짐승의 뼈마디엔 틈새가 있고, 칼날엔 두꺼움이 없어 살과 뼈의 틈새로 칼을 놀려 수십 년 쓴 칼이 숫돌에서 막 가져온 듯했다는 ‘장자(莊子)’의 한 대목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이두아 · 변호사
입력 : 2006.11.20 19:00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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