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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노마진' 정부

▲ 김란도 서울대 교수
일요일 저녁, ‘지하철 2호선의 외로운 벤처 사업가’를 자처하는 한 개그맨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이름하여 땡전 한 푼 ‘노마진’. 그는 신상품을 소개하며 개그를 시작하는데, 이런 식이다. “오늘 갖고 나온 상품은 에어컨입니다. 이 에어컨이 기존의 상품과 무엇이 다르냐? 그렇습니다. 이 에어컨은 온도 자동제어장치가 있어서 냉방병에 걸리지 않게 해준다는 거죠. 하지-만! 다른 모든 질병은 걸릴 수 있다는 거….” 웃음은 언제나 “하지-만!” 이후의 대사에서 터진다. 특정한 목적 하나를 위해, 더욱 본질적인 기능들을 모두 희생했다는 반전(反轉)이 우스운 것이다. 그렇다면 있으나 마나 한 불량상품 아니겠느냐는 조롱이 이 유머의 핵심이다.

재미있는 것은 채널을 뉴스 프로그램으로 돌려도, 똑같은 노마진 개그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아파트 분양가를 낮추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나랏돈을 풀어야 한다는 거….” 어디 그뿐인가? “여러분, 드디어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핵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거….” “특목고를 규제하여 사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액을 들여서 해외유학을 보내야 한다는 거….” 한이 없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말이지 참여정부에 ‘노마진 정부’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노마진(no margin)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무엇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일까? 외판원이 이윤을 남기듯이, 정부정책은 신뢰를 남겨야 한다. 효과 있는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이윤처럼 남기고, 그 신뢰는 다음 정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다시 작용한다. 반면 한 번 신뢰를 잃으면 그 이후에는 백약(百藥)이 무효다. 그래서 신뢰는 중요하다. 하나의 정책이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비용편익분석을 합리적으로 수행하고, 정책대상집단의 유인(誘因)과 반응을 예측하여 시장친화적으로 세심하게 설계해야 하며, 부처 간에 일치된 정책집행의 조율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정기간 일관성을 가지고 시행해야 한다.

물론 정책성공의 조건이 이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아가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정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정책이란 어려운 것이고, 겸손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부동산 정책사례가 보여주듯, 이러한 조건들을 어느 하나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여론과 전문가들이 그렇게 우려하는데도 강행한 단견(短見)의 정책과 편협한 인사가 실패를 낳고, 그것은 국민의 신뢰상실을 불러, 그 불신이 다시 다음 정책의 실패로 되풀이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어디 부동산뿐이랴? 곤두박질치는 대통령의 지지율과 연전연패하는 여당의 성적표가 가장 확연한 지표다. 이제 신뢰라고는 ‘땡전 한 푼’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은 이 문제를 연대(連帶)로 해결하려는 눈치다. 당장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다시 한번 ‘노마진식’ 해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 여러분, 저희가 통합하여 간판을 바꿔 달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바뀐 건 하나도 없다는 거….”

문제는 신뢰회복에 있다. 믿음을 다시 찾으려면 겸허하고 진심 어린 자기 반성이 앞서야 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변화와 함께 인적 쇄신이 가시적으로 따라야 한다. 그것이 대선전략으로도 바른 방향일 것이다. 이합집산이나 간판 바꿔 달기로만으로는 달아난 신뢰를 되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그로 얘기를 시작했으니, 그 유쾌한 개그맨의 말투로 글을 맺고자 한다. “대한민국 4800만 국민 모두가 정부정책을 신뢰할 수 있는 그날까지, ‘통절한 반성’에 밑줄 좌악, ‘정책변화’에 별표 하나, ‘인적 쇄신’에 돼지꼬리 땡땡.”

김란도 ·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입력 : 2006.11.08 19: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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