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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안보 중간지대’에 설 수 없는 이유

▲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독선이나,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는 편견과 같은 이분법적 현상은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골칫거리였던 것 같다. 공자가 “반드시 해야 한다느니, 반드시 하면 안 된다느니 고집하지 않고 중용을 지키겠다”며 ‘중용’을 강조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정치는 갈수록 뚜렷해져만 가는 “진보냐 보수냐, 좌파냐 우파냐, 자주냐 동맹이냐”라는 양분화 현상 속에서 중간에 서기보다는 태도를 명확히 하라는 흑백논리의 늪에 빠져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간지대 목소리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타협이나 양보는 변절이나 패배로 매도되고, 절충이나 중도 역시 기회주의적, 보신주의적인 회색분자의 처세술로 비판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보정책에 있어서도 민족공조파와 동맹강화파 간 줄긋기가 선명하다. 양 진영은 “북한과의 전쟁을 원하는가,” “세계와 단절되어 우리끼리 쇠락해 갈 것인가”와 같이 더 이상의 논의를 허용하지 않는 양자택일의 논법들 속에 묻혀있고, 학자건 정치인이건 간에 어느 쪽으로든 선택을 내릴 경우 반대진영의 맹렬한 비판이 이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수구꼴통’이니 ‘빨갱이’니 하는 식의 말도 거침없이 뱉어낸다. 각각의 입장을 자세히 들어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어느 한쪽 이념적 편향성에 치우친 사고가 실질적으로 나라와 국민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인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 속에서 세력균형의 추이에 따라 언제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 재설정’이 가능한 중간지대를 외교적 노선으로 삼는 것은 현명한 판단일까? 특히 미국의 헤게모니와 중국의 부상이 맞닿아 있는 동북아 역학관계 속에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중간자(균형자)적 위치를 견지하며 생존전략을 구사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의존 바이러스’나 ‘약소국 현실주의’ 외교의 관성에서 탈피하는 길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주변열강들의 세력균형이 안정되지 못하고 유동적인 현실은 우리나라 대외관계에 있어 불안요소이지 기회는 아닌 것 같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안보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중간에 선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북한이 핵실험이라는 레드라인을 넘은 현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포용정책만이 우리가 숙명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전략”임을 천명하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북한 동포들의 고통만 가중시킬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봉쇄와 한반도 전쟁 발발을 초래할 수 있는 대북 군사제재에 찬성하는 극단적 제재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이다. 그래서인지 북한의 잘못을 따끔하게 비판하고 ‘상징적 제재’는 가하되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대북 포용과 제재라는 양 극단의 중간지대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대북 군사·외교적 역량이다. 아무리 우리 국력이 북한에 비해 막강하다 하여도 북한의 핵보유로 이미 군사적 균형이 깨어지고 있다. 이는 아무리 대통령이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를 안심시키고 싶고, 안보위협이 과장된 것이라고 역설하고 싶어도 엄연한 사실이다. ‘협상을 이끌어낼 만큼만의 제재’도 좋은 말이다. 단 북한이 우리의 비판을 따끔하게 받아들이고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반드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있어 외교적 승자는 계속하여 북한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50여 년 전 남한을 침공한 것은 차치해두고라도, 그 이후 북한의 모든 나쁜 행동들이 ‘남북한 특수관계’나 ‘우리 민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면죄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급기야 우리 정부의 북핵불용 원칙마저 ‘한반도 평화를 깨뜨리면서 북핵제거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나는 나를 ‘안보 중간지대‘에 설 수 없게 하는 이러한 현실 때문에 답답하다. “평화는 (말로만) 전쟁을 규탄하고 (말로만) 평화를 갈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한 원로 외교관의 말이 생각난다.

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06.11.05 22:4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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