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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누구 없소, 희망 찾아줄 지도자는…

▲ 전봉관 KAIST 인문과학부 교수·국문학
북한 주민이 밥을 굶는 것은 김일성 부자가 특별히 정치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한민족이 원래 그렇게 살았다. 풍년이 들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고, 흉년이 들면 보리죽도 못 얻어먹기 일쑤였다. 삼순구식(三旬九食), 삼십일 동안 아홉 끼 먹는다는 섬뜩한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갖은 산나물들로 한상 가득 차려진 한정식이 몸에 좋으라고 개발된 음식이 아니다.

인민은 입에 풀칠도 못하는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헤네시 코냑에 샥스핀 요리를 먹는다고 욕할 것도 없다. 백성이 굶주린다고 자신마저 식음을 전폐하는 국가원수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김일성 부자가 특별히 정치를 잘못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이 미국이나 일본만큼 부유하지 못하고, 유럽만큼 여유롭지 못하다고 원망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들 나라와 출발부터 달랐다. 불과 6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없었고,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필리핀만큼 잘 살자!’는 게 국가적 과제였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국가 중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업을 동시에 이룩한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 유럽, 일본과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이 위대한 이유다.

그런데 왜일까? 한민족이 세운 가장 위대한 나라로 평가되기에 충분한 대한민국은 정작 자국민에게 인기가 없다. 해외투자를 늘리고 국내투자를 줄이는 기업가, 만삭의 몸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원정출산 임신부, 불임도 아닌데 아이 없이 사는 부부, 자식 교육을 위해 혼자 사는 기러기아빠.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한민국이 싫다는 것이다. 월드컵 때면 붉은 티셔츠를 입고 광화문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 악마가 이웃에 있는데 대놓고 싫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자식을 글로벌 리더로 키우기 위해서 대한민국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에둘러 말한다.

대학시절 주사파 선배들이 하숙방에 숨어서 단파라디오를 들을 때, 대한민국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북한과 공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업가가 국내 사업장을 접고 해외로 떠날 때, 생산원가를 줄이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금 많고 간섭 많은 대한민국을 탈출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을 때, 둘만의 시간을 더 가지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에게 대한민국에 사는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은 활기를 잃었다. 배고픔과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사는 것은 점점 더 고달파진다. 개발독재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고, 독재와 싸우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 시절 대한민국에는 배고픔에서 벗어날, 독재와 억압에서 벗어날 희망이라도 있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된다고, 신도시 하나 더 세우고, 경부운하 놓는다고 대한민국이 살고 싶은 나라가 될까?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장에서 오늘 잘릴지 내일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장상사 눈치, 이웃 눈치, 부모 눈치, 친척 눈치까지 살펴가면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 손으로 땡전 한푼 벌어보지 못한 자들이 개혁을 한답시고 묵묵히 일해온 사람들을 깔보는 상황에서 몇십만 원 출산보조금 준다고 아이를 낳고 싶을까?

현재 대한민국에는 희망은 사라지고 푸념과 불안이 가득하다. 한민족이 세운 가장 위대한 나라 대한민국은 희망의 리더십을 기다린다. 한국인들은 좀 더 품격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기를 바란다.

전봉관 KAIST 인문과학부 교수·국문학
입력 : 2006.11.02 21:46 52' / 수정 : 2006.11.03 08:1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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