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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강정구교수의 '한국전' 왜곡

▲ 제러미 수리·美위스콘신대 교수
제러미 수리(Jeremi Suri) 교수는 ‘수정주의(revisionism)’ 역사 해석의 잘못을 극복하면서 미국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잡은 ‘탈수정주의(post-revisionism)’의 대표적 학자로 꼽힌다. 스탠퍼드대 학사와 예일대 박사 출신. 위스콘신대는 한국전의 원인을 ‘미국의 남침 유도’로 설명하는 수정주의 학파의 본거지였고, 동국대 강정구 교수는 이곳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수정주의는 1980년대 말 공산권의 붕괴로 실증적 자료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근거를 상실했다. 수리 교수의 대표 저서로는 냉전의 전개·해체 과정에 관한 ‘세력과 저항 : 세계적 혁명과 데탕트의 발생’과 ‘헨리 키신저와 미국의 세기’ 등이 있다.

60년전 일제(日帝)의 패망은 한반도를 두개의 적대적 국가로 분할시켰다. 한쪽은 소련에, 다른 한쪽은 미국에 지배되었다. 두 국가와 양쪽의 보호자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정권 아래로 민족을 합치길 바랐다. 1950년에서 53년까지의 파괴적 전쟁은 이런 시도에 실패했고, 한국인들의 고통과 분단을 연장시켰다.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은 전쟁으로 인한 상실에 슬퍼하며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미래의 평화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해 정직하고 개방된 자세로 맞서야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단순하고 정치화된 판단은 더 많은 오해와 분란, 고통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정확한 역사는 미래의 분란을 피하고 통일로 향한 진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강정구 교수가 최근, 미국이 한국의 통일을 ‘막았고’ 한국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다고 한 주장은 무책임하고도 잘못된 것이다. 그는 그에 반대되는 명백한 증거들을 무시하고 있으며 한국전의 유산을 왜곡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북한에 있는 범죄적 정권을 변명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그들의 주민들을 계속해서 굶게 하고, 돈키호테식의 비현실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하게도 이웃국가들을 향해 전쟁을 위협하고 있다. 강정구 교수의 역사적 부정확성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이것은 남과 북 한국인들의 진정한 이해를 해칠 것이다. 역사적 기록에 대한 간단한 사실적 검증이 필요하다.

1990년대에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의 고위 정부기록들은 한국전에 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세 가지의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북한과 소련, 중국의 지도자들은 남한을 기습공격할 계획을 1950년에 서로 협의했다. 그들은 소련에 의해 지배되는 공산주의 영향력을 동북아시아로 확대하려 했다.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은 1950년 6월 25일의 공격을 한국해방을 위한 내전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토론과 전쟁계획을 위한 만남에서 한국인들이 바라는 것과는 무관하게 공산주의 확장에 대해 얘기했다. 공산세력들은 분명한 침략전쟁을 벌였다.

둘째,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은 미국의 강력한 대응을 예상하지 않았다.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1950년 1월 남한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하자 공산세력들은 그들의 적에서 취약점을 알아챘고 손쉽게 영토를 장악할 기회로 보았다. 그들은 다른 곳과 달리 남한에서는 공격을 저지당하지 않았다. 이런 증거들에 비춰보면, 강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이 지나치게 개입적이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전 전에 침략을 저지할 만큼 충분한 힘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국의 군사적 허약성은 공산주의자들의 호전성을 부추겼다. 전쟁의 첫 수주간이 보여주듯이 미국의 허약성은 공산주의 확장을 격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한반도 인근에서의 미군의 주둔은 사실 얼마되지 않았고 반응은 너무 느렸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가지 논란을 안고 있는 인물이지만, 그는 그가 조직한 영웅적 반격으로 명예를 얻어 마땅하다. 1950년 9월 인천에서의 연합군의 상륙작전은 남한을 공산지배로부터 구했고, 남한 사회가 북한의 침략자들에 대항해 자신을 지킬 자원들을 제공했다.

셋째, 전쟁 3년 동안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북한의 전략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한국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도, 미국의 피를 흘리게 하고 공산주의의 세계적 확장을 돕기 위해 김일성으로 하여금 전투를 계속하도록 부추겼다. 스탈린은 마오쩌둥과 함께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군사적 지원을 제의했다. 이들의 부추김에 따라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위신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의 고통을 연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유례없는 가난과 고립, 자기기만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 연대를 위해 전쟁을 계속했지 한국인들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침략에 관한 이런 통찰들은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의 웹사이트(www.cwihp.org)에 게시되어 있는 과거 비밀정부자료들을 통해 언제든 접근할 수 있다.

남한과 미국도 전쟁기간 동안 비난받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를 더 선호했다”는 강 교수의 주장은 틀린 얘기다. 그러나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억압적이고 인기가 없었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미국은 이승만 정부를 지지했지만, 그의 독재적 행동은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한국전 전에 애치슨 국무장관과 다른 미국 관리들은 이승만으로 하여금 중요한 개혁들을 단행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공산주의의 공격이 가져온 게 있다면 이승만과 미국을 더 가깝게 만든 것이고 남한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민주적 변화를 채택하도록 하는 압력을 제거해 준 것이다.

1950년에서 53년까지 한국에서의 미국의 개입은 분명히 비판적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강 교수 식의 무책임하고 부정확한 것이 되어선 안 된다. 그는 한국전과 냉전 일반에 대한 수정주의(revisionist) 관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수정주의는 1960년대와 70년대 일단의 뛰어난 역사학자들에 의해 널리 퍼졌으며 그들 중 일부는 강 교수가 박사학위 공부를 했던 바로 이 대학에서 가르쳤다. 수정주의자들은 미국이 공산주의의 위협을 과장했고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군사우선주의적 정책들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정책의 결점들을 드러내는 데는 이런 주장이 가치있었던 게 사실일지라도 공산주의 침략전쟁이었던 한국전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초기대응의 기본적 합법성을 결코 훼손할 수는 없다. ‘탈수정주의(Post-revisionist)’ 역사가들은 한국전 동안의 미국의 행동에서 방어적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이제 핵기술을 보유한 북한이 고립되고 호전적이며 예측불가능한 상태로 남아있는 세계에서 한국전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 그 우방들은 평화적 통일을 위해 협력해 가면서도 북한의 공격성이라는 현실, 약하게 보이는 것의 위험성, 지역적 안정세력으로서 미국의 필요한 역할을 인식해야만 한다. 1950년 6월 25일 이후 미국은, 북한이 다시는 그의 살인적 정권을 한반도 전체에 걸쳐 확장시키지 못할 것임을 보증해 왔다. 한국민들은 미국의 단점들은 비판해야 하지만, 진정한 위협은 북한에서 오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The Real History of the Korean War

Sixty years ago the defeat of Imperial Japan left the Korean peninsula divided into two antagonistic states one dominated by the Soviet Union, the other dominated by the United States. Both Korean states, and their foreign patrons, hoped to unite the nation behind their respective regimes. The devastating war of 1950-53 failed to fulfill this promise, prolonging the suffering and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ople. To this day, Koreans grieve for their loss and long for unification.

Future peace requires an honest and open grappling with the past. Simplistic and politicized judgments about the Korean War will only contribute to more misunderstanding, conflict, and suffering. Accurate histories of the Korean War are needed to avoid future conflict and accelerate progress toward unification.

Professor Kang Jung-Koo’s recent accusations that the United States “blocked” Korean unification and made “slaves” of the Korean people are irresponsible and inaccurate. He ignores clear evidence to the contrary and distorts the legacies of the war. Most troubling, he excuses a criminal regime in North Korea, one that continues to starve its own people, pursue Quixotic projects, and, most significant, threaten war against its neighbors. If uncorrected, Professor Kang Jung-Koo’s historical inaccuracies will undermine the true interests of the Korean people, North and South. A short factual examination of the historical record is necessary.

High-level government records from Russia and China, released in the 1990s, reveal three indisputable facts about the Korean War. First, the leaders of North Korea, the Soviet Union, and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coordinated their plans in 1950 to launch a surprise attack on South Korea. They aimed to spread communist influence, dominated by Moscow, throughout Northeast Asia. Kim Il-Sung, Josef Stalin, and Mao Zedong did not conceptualize the invasion of 25 June 1950 as a civil war for Korean liberation. In their discussions and planning meetings they spoke of communist expansion, regardless of what the Korean people desired. The communist powers fought a clear war of aggression.

Second, Kim, Stalin, and Mao did not expect a strong American response. Following the U.S. military withdrawal from the peninsula and Secretary of State Dean Acheson’s exclusion of South Korea from the American “defensive perimeter” in January 1950, the communist powers perceived weakness in their enemies. They saw an opportunity to seize territory at little cost. They were not deterred from attacking South Korea, as they were elsewhere. In the light of this evidence, it appears that the United States was not too interventionist, as Professor Kang contends. Instead, Washington failed to show enough force before 25 June 1950 to deter aggression. U.S. military weakness encouraged communist belligerence. As the first weeks of the war indicated, U.S. weakness also made a repulsion of communist advances almost impossible. The American military presence near the Korean peninsula was, in fact, very light and it was much too slow to react. General Douglas MacArthur remains a controversial figure in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but he deserves credit for the heroic counter-offensive that he organized. The landing of allied forces at Inchon in September 1950 saved South Korea from communist domination and it provided the resources for the society to defend itself against the invaders from the North.

Third, during the three years of war Soviet leader Josef Stalin exerted significant influence over North Korean strategy. He encouraged Kim Il-Sung to continue fighting, at grave cost to the Korean people, in order to bloody the United States and aid communist advances worldwide. Stalin, along with Mao, offered extensive military assistance to keep the war going. At Soviet and Chinese urging, Pyongyang prolonged the suffering of the war to protect Moscow and Beijing’s prestige. In the process, North Korea descended into ever darker circumstances of poverty, isolation, and self-delusion. Kim Il-Sung continued the war out of communist solidarity, not a commitment to Korean well-being. These insights about communist aggression are readily accessible in formerly secret government documents posted on the worldwide web by the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www.cwihp.org.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were not without blame during the war. Professor Kang is inaccurate when he asserts that “the people of Korea liked communism much more than they liked capitalism.” He is, however, correct to argue that the South Korean regime of Syngman Rhee was repressive and unpopular. The United States supported Rhee’s government, but it was not happy with his dictatorial conduct. In fact, before the outbreak of war Secretary of State Acheson and other U.S. officials were pushing Rhee to institute serious reforms. If anything, the communist attack brought Rhee and the U.S. closer together and lifted the pressure for the South Korean leader to adopt democratic changes.

The American intervention in Korea during 1950-1953 surely deserves critical analysis, but not in the irresponsible and inaccurate terms employed by Professor Kang. He echoes a revisionist perspective on the war, and the Cold War in general, that was popularized by a group of distinguished historians in the 1960s and 1970s, some of whom taught at my own university, where Professor Kang studied for his Ph.D. The revisionists challenged the United States for exaggerating the communist threat and pursuing militaristic policies out of economic self-interest. Although this argument was valuable in highlighting the shortcomings of U.S. foreign policy, it never undermined the basic legitimacy of initial American and South Korean responses to what was a war of communist aggression. Newly available evidence confirms the nature of this aggression. “Post-revisionist” historians recognize the defensive role of American activities during the Korean War.

In a world where North Korea, now in possession of nuclear technology, remains isolated, belligerent, and unpredictable, an accurate understanding of the Korean War is imperative. As the South Korean government, its citizens, and its allies work toward peaceful reunification, they must recognize the reality of Pyongyang’s aggression, the dangers of appearing weak, and the necessary role for the United States as a stabilizing force in the region. Ever since 25 June 1950, the United States has insured that North Korea will never again come so close to spreading its murderous regime across the entire peninsula. South Koreans should criticize American shortcomings, but they should not forget that the real threat comes from Pyongyang.

Jeremi Suri is an Associate Professor of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in the United States. He is the author of a widely acclaimed book, Power and Protest: Global Revolution and the Rise of D tent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제러미 수리· 美 위스콘신대 교수
정리=허용범기자 heo@chosun.com
입력 : 2005.10.17 19:11 08' / 수정 : 2005.10.17 19:13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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