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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도 예술일까?

게임도 예술의 한 형식일까? 이 문제는 늘 시끌벅적한 논쟁을 불러온다. 게임 팬들은 게임은 박물관이나 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만큼이나 문화적으로 중요하고 미묘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반대자들은 예술의 자격을 얻기에는 게임은 지나치게 경망스럽고, 지나치게 폭력적이며, 지나치게 시간낭비적인 요소가 다분하다고 비난한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토론은 아무런 진전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놀라운 게임플레이 컨셉트로 이러한 곤란한 질문을 깔끔하게 받아넘기는 게임인 오오오카미(Okami)를 발견한 것은 내게 기쁨이었다.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예술, 즉 미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오카미와 함께라면,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의 표현대로 “한 줄기 논리(in a puff of logic)”속에서 게임과 예술 사이의 경계는 붕괴된다.

오오카미에서 당신은 고대 일본신의 화신이자 그림을 그리면 그것이 실제로 나타나게 만들 수 있는 늑대 역을 맡는다. 게임을 하는 도중 언제든 버튼만 누르면 장면이 정지되면서 양피지로 변한다. 당신은 양피지 위에 먹을 묻힌 일본 붓을 휘두른다. 정지 상태를 풀면, 얍! 당신이 그린 그림은 형상을 가진 실물로 변하게 된다.

하나의 플레이 메커닉(play mechanic: 게임플레이를 만드는 규칙들의 구조)으로서 이 게임은 기분 좋은 새로움이다. 그리고 퍼즐풀이와 전투를 기묘한 미적 경험으로 탈바꿈시켜놓는다. 예를 들어 거대한 상어를 미친 듯이 피해 다니고 있을 때조차 나는 쓸 만한 물건을 스케치할 장소를 찾아 레오나르도(Leonardo) 다빈치처럼 이 장면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었다(나는 백합의 부엽[浮葉]들을 그린 뒤 그것들을 밟고 건너 뛰어 적을 피했다).

다른 상황에서는 훨씬 더 신에 가까운 창조의 묘기를 부렸다. 돌풍을 그려 적을 쓰러뜨렸고, 하늘에 태양을 그려 낮을 밤으로 바꿨으며, 허공에 하트를 그려 친구를 사귀었다. 나는 낡고 부서진 물레방아의 잃어버린 살을 그려 넣었으며, 꽃잎에 색을 입혀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찔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이 게임은 절대 식상해지는 법이 없다. 뭔가가 휙 소리를 내며 실제의 것으로 변할 때마다, 나는 손가락을 휘두르며 사방을 물감범벅으로 만들어놓고 좋아하는 아기와도 같은 짜릿함을 새삼 느꼈다. 오오카미는 모든 예술을 지탱하는 존재적 생소함에 적절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필이면 신이 되어 플레이 하는 게 당연하다!

유념할 것은, 예술 창조에 바탕을 둔 플레이 메커닉은 그것이 사용하고 있는 그래픽 엔진의 수준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오오카미는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다. 이 게임은 전적으로 셀 쉐이드(cell-shade) 방식과 활달한 붓놀림 형상으로 렌더링하여 진짜 고대 일본 미술작품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각각의 애니메이션은 환상적 사실주의(magic realism)에 완벽하게 맞춰져 있다. 늑대가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할 때 뒤쪽으로 흩어지는 흙은 꽃이 된다. 너무나 사랑스런 모습이다. 만약 모든 게임 설계자들이 이렇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상세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루브르 박물관조차도 이를 전시하기 위해 TV세트를 설치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 그림을 그려 궁지를 벗어나면서(미안하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오카미의 핵심 발상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싶다면, 확실히 오오카미는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플레이하기에 좋은 게임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반대 또한 참이라는 생각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이다. 예술도 종종 게임 같을 때가 있다.

그렇다면 결국 게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그 안에서 일련의 규칙을 따르겠다고, 당신의 행위에 제한을 두겠다고 동의한 시스템이다. 그 다음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훌륭한 게이머라면 규칙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새로운 복잡성, 게임 설계자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테크닉들을 발견한다. 농구의 새로운 견제 동작, ‘미드나이트 클럽(Midnight Club)'의 한 구석을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통과하는 새로운 재주 등이 그것이다.

예술도 정확하게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창의성은 한계 속에 갇힌 몸부림에서 나온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수세기 동안 변함없는 진부한 매체였던 유화로 그리기에는 생소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무던히도 애쓴 끝에 명암법을 고안해냈다.

영국의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는 소네트(14행으로 된 단시)를 쓰고 싶었지만, 'bam'을 만들기 전까지는 소네트의 일반 규범에 열중했다. 그는 길고 비현실적인 행을 사용하여 소네트의 형식을 재가공해냈다. 자신들의 일에 집중할 때 예술가들은 근본적으로 게임과 같은 사고 형식을 수용한다.

오오카미에서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나는 이 게임 시스템의 한계를 즉각 알아챘다. 날아가는 학처럼, 뭔가 복잡한 것을 허공에다 그리려 하면 게임 엔진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러한 한계는 나를 실망시켰다. 어이, 이 게임에서는 내가 화간데, 뭐든 다 그릴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어째서 겨우 수십 개의 물체 밖에 그릴 수 없다는 거지?

그러나 플레이를 계속 해나가면서 나는 그러한 간단한 붓놀림을 새롭고 교묘한 방법으로 해보는 게 재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적들 위로 작은 체리 폭탄을 그려서 나타나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벽을 관통하거나 퍼즐을 푸는 데도 체리 폭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면 오오카미는 무엇인가? 게임처럼 느껴지는 예술 모방장치? 아니면 예술처럼 느껴지는 게임? 이 둘의 규범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소화하는 게임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 유명한 시인의 말대로 그것은 크고, 많은 것을 담고 있으니까.

(wired.daum.net) = By Clive Thompson

입력 : 2006.10.26 10:09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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