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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에 겁먹지 말라

지난 8월 16일, 영국 맨체스터 행 여객기에서 두 명의 남자 승객이 쫓겨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시아나 중동 사람 같은 외모에 아랍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가죽재킷을 걸치고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힐끔힐끔 보았다. 결국 다른 승객들은 그들과 동승하기를 거부했다. 두 남자는 몇 시간 동안 심문을 받고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8월 15일에는 한 공항 터미널에서 승객들이 모두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어느 탑승객의 화장품이 폭발물로 잘못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덴버에서는 한 남성 이슬람교도가 기도문을 외우다가 비행기에서 쫓겨났다. 결국 교통안전국(Transportation Security Administration, TSA)은 승무원이 과도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그 이슬람교도는 덴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이 되서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튿날 시애틀 항구의 터미널에서도 대피소동이 일어났는데, 탐지견들이 엉뚱한 것을 폭발물로 잘못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8월 19일에는 비행기 한대가 플로리다 주 탬파에 비상 착륙했다. 승무원들이 화장실 문 두 개가 잠긴 것을 발견하고 이를 수상히 여겼기 때문이다. 기내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편 샌안토니오 행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한 명은 화장실의 연기 탐지기를 건드렸다가 가택 수색까지 받고 나서야 테러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8월 16일, 런던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는 한 여성 탑승객이 공황 발작을 일으키며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이 비행기는 제트 전투기들의 호송을 받아 보스턴 공항에 착륙했다. “그 여성은 핸드크림과 성냥을 들고 있었지만 테러의 위협은 없었다.”고 사건 발생 이후 TSA 대변인은 설명했다.

8월 18일에는 런던 발 이집트 행 비행기가 이탈리아에 비상 착륙했다. 비행기 멀미용 주머니에서 폭파 위협을 암시하는 글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행기에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 그 글이 언제부터 기내에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테러의 핵심은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다. 때로는 어떤 정치적 목표를 촉구하거나 순전히 증오를 표출하기 위해 테러가 행해지기도 한다. 테러범들이 살해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 표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손실에 불과하다. 그리고 비행기나 기차, 상점, 버스를 폭파하는 것 역시 테러의 목적이 아니라 테러의 전술일 뿐이다.

테러행위의 진짜 표적은 바로 우리들이다. 살해당하지는 않지만 늘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수십억 명의 나머지 사람들. 테러리즘의 실질적인 핵심은 테러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테러범들이 원하는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23명의 테러용의자들이 체포됐을 때 우리 모두는 다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계와 정치계에서 이 테러용의자들이 액체 폭발물로 비행기를 폭파할 계획이었다고 보도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떠들어대지 않았던가.

사실, 사건이 보도된 후 화학자들이 그 폭발물의 정체를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들의 계획이 성공했으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들 용의자들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도 매우 희박하다. 실제로 그들 가운데 비행기 표를 구입한 사람도 없었고, 여권조차 갖고 있지 않은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폭파의 위협은 있었지만, 이들 용의자들에게 폭발물과 항공기는 단지 전술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의 목표는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었고, 그런 면에서 볼 때 그들은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만약 그들이 비행기 10대를 폭파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일부 비행 일정이 취소되고 공항은 혼돈의 장이 됐을 것이며 수하물 기내반입도 금지됐을 것이다. 세계 지도자들은 보다 강력한 보안 정책과 정치적 입장에 대해 떠들어대고 겁에 질린 승객들 때문에 도처에서 잘못된 경보가 울렸을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근에 일어난 상황도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테러의 위협을 선거운동에 활용함으로써 테러범들을 돕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테러범들의 음모와 위협을 경고하는 기사를 쓸 때마다 그들을 돕는 셈이다. 우리 일반인들 역시 공포에 떨며 그것을 끊임없이 화제로 삼는다면 테러범들에게 도움을 주는 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행동들이 테러범에게 힘을 실어줌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되풀이시키고 있으며, 테러의 효과 또한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을 테러범으로 몰아세우거나, 테러행위를 그들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테러행위의 목적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최상의 대처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테러행위의 복잡한 인과관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말도 안 되는 책략이나 잘못된 경보는 사실상 다음과 같이 두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해를 입힌다. 첫째, 공포의 수준을 높이고, 둘째, 진짜 위협에 대처하고 실질적인 보안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고갈시킨다. 테러범들은 틀림없이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가정을 해보자. 만일 영국정부가 23명의 용의자들을 조용히 잡아들였다면, 그리고 TSA와 유럽의 담당 기관에서 액체 반입 금지령과 같은 무의미한 항공안전정책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언론에서 그렇게 끝없이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정치인들이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겁에 질려 살아야 하는지를 상기시키지 않았다면? 만일 그랬다면 테러범들은 완전히 참패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다 의연하게 테러를 저지함으로써 테러에 맞서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손을 놓고 테러행위를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테러와 싸우기 위해 행할 수 있는, 그리고 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것들은 특정한 책략들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주로 지력과 수사의 방식을 활용하는 조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우리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테러에 맞서 초연함을 잃지 않는 것, 겁을 먹지 않는 것이다. 이슬람교도 두 명이 나란히 서서 손목시계를 보더라도 법석을 떨지 않는 것이 바로 우리가 유지해야 할 태도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도는 약 10억 명에 달하며, 그들 중 상당수는 아랍인이 아니다. 게다가 중동에 사는 약 3억 2천만 명의 아랍인들 가운데 테러리스트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비판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것, 테러리즘을 정치적인 경력을 강화하거나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높이는데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방어책은 바로 겁을 먹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테러행위는 우리가 직면하는 수많은 위험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리 흔히 일어나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또, 그러한 공포감을 악용하여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돈만 낭비할 뿐 우리를 보다 안전하게 지켜주지도 못하는 보안 사기극을 선동하는 정치인들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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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슈나이더(Bruce Schneier)는 카운터패인 인터넷 시큐리티(Counterpane Internet Security)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이며 “두려움을 넘어서: 불확실한 세상에서 보안문제를 현명하게 생각하라(Beyond Fear: Thinking Sensibly About Security in an Uncertain World)”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웹사이트에 가면 슈나이더와 만날 수 있다.

(wired.daum.net) = By Bruce Schneier

입력 : 2006.08.28 08:4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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