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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져 20년…게임왕국의 세계지존 될 것"
온라인게임 수출왕 그라비티 김정률 회장

▲ 김정률 회장
게임대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온라인게임은 한국산 ‘라그나로크’다. 라그나로크의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에 매료된 일본 청소년은 해마다 게임 속 주인공처럼 분장하고 한자리에 모여 축제를 벌인다. 일본에서 시작된 ‘라그나로크 축제’는 대만과 태국 등 동남아로 번지면서 국제적인 문화 현상이 됐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라그나로크 월드’ 축제에는 전세계에서 7만여명이 참석했다. 라그나로크는 일본·대만·태국 등 7개국에서 온라인게임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게임을 만든 ㈜그라비티 김정률 회장의 나이는 52세. 김 회장은 20~30대 CEO(최고경영자)가 대부분인 국내 게임업계에서 최고령에 속한다. 삼국지의 ‘장비(張飛)’를 연상시키는 외모는 귀엽고 깜찍한 게임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청소년용 오락실 게임으로 시작해 20여년간 게임 소프트웨어라는 한 우물만 팠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잘 안 믿어요. 대부분 ‘언제 그라비티를 인수하셨어요?’라고 묻지. 40대 후반에 직원 5명으로 이 회사를 창업했다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정말이요?’라고 되묻는답니다.”

김 회장은 사업 환경이 격변하는 게임업계에서 나이 때문에 불리한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수출하는 데는 오히려 나이와 외모 덕을 좀 봤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공무원이나 사업 파트너가 나를 처음 보고는 한국에서 온 재벌쯤으로 착각해 뜻밖의 호의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라그나로크는 가장 많은 나라에 수출된 국산 온라인게임이다. 서울 신사동 그라비티 본사 3층. 김 회장의 집무실 입구에는 세계지도가 걸려 있다. 라그나로크가 진출한 나라들은 지도상에 깃발이 꽂혀 있다. 일본·중국·동남아·유럽·중동·아프리카 등 37개국. 전체 이용자 수는 3000만명이 넘는다. 이 시각 서버에 접속해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람만 78만명이다. 매월 해외 로열티 수입으로만 수십억원이 꼬박꼬박 입금된다.

김 회장이 게임 수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1953년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고려대 사대부고와 일본 지요다공업기술전문대를 졸업한 뒤 1982년 서울 청계천에서 ‘갤러그’와 같은 오락실 게임의 기판을 제작하는 업체를 차렸다. 직원 2명과 3평짜리 공간에서 라면을 먹으며 개발한 기판은 차츰 기술력을 인정받아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수출국가는 1983년 홍콩을 시작으로 멕시코, 스페인, 이탈리아 등 30여개국으로 확대됐다. 1992년에는 ‘수출 1000만불 탑’도 받았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자금난으로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전재산을 날리고 9평짜리 반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던 그는 새 게임을 개발해 오뚝이처럼 재기했다. 그 당시 개발한 오락실용 음악 반주 게임 ‘이지(easy) 투 DJ’가 큰 인기를 끌면서 대박을 터뜨렸던 것. 그는 “현금장사여서 지폐를 포대에 담아 방 안에 차곡차곡 쌓았는데 포대가 넘쳐 문을 닫지 못할 정도였다”며 “말 그대로 돈벼락을 맞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오락실용 게임 사업에서 손을 뗐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번 돈으로 이민을 떠나 여생을 편히 살까 잠시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못다 이룬 게임왕국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어요.”

그는 2000년 4월 온라인 게임업체 그라비티를 설립했다. 20대 공학도들의 독무대였던 온라인게임 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도전했던 40대 후반의 승부수는 또 한번의 대박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창업 5년 만에 ‘해가 지지 않는 라그나로크 월드’라는 꿈의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앞길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올해 초 나스닥에 상장한 뒤 회사의 매출액과 순이익이 줄어들자 미국 현지 투자자들이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게임업체들의 도전도 거세다. 그에게 향후 사업 계획과 재도약의 묘책을 물어봤다.

-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의욕적으로 도전했던 미국 시장에서 실패하고, 중국 시장에서 짝퉁 게임 때문에 애를 먹은 뒤 해외진출에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다. 반면 그라비티는 줄곧 해외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앞으로는 더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반면 해외에는 아직 온라인게임이 뭔지 모르는 나라도 많다. 이런 시장이 게임업계의 ‘블루오션’ 아니겠나? 개척하기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면 미래는 없다.”

- 지난 7월 중국 쪽 협력 파트너를 중국 최대 게임 유통업체인 샨다(盛大)로 바꿨는데….

“라그나로크가 일본은 물론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에서 1등이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기존의 파트너가 대만계 업체여서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샨다의 천톈차오(陳天橋) 회장을 만났을 때 ‘당신네 회사 이름이 한국어 발음으로 ‘산다(buy)’여서 승승장구하는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그런데 통역이 오해를 해서 ‘산다(live)’라고 전했다. 나중에는 ‘어느 쪽이든 다 좋다’면서 함께 웃었다.”

-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손 회장은 2002년 그라비티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알게 됐다. 그는 미래를 읽는 안목과 기업가로서의 수완이 탁월하다. 라그나로크를 일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겅호엔터테인먼트의 손태장 사장은 손 회장의 동생이다.”

- 코스닥을 거치지 않고 올해 초 미국 나스닥에 곧바로 상장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라비티 매출의 80%는 일본 등 해외시장에서 나온다.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코스닥보다 나스닥에 상장하는 것이 그라비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스닥에 상장하면 기업의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져 해외 파트너를 구하기가 더 쉬워진다.”

- 나스닥 상장 후 주가가 떨어져 현지 투자자들이 소송을 걸었다는데….

“말도 마라. 앞으로는 언론 인터뷰도 안할 생각이다. 인터뷰를 하면 내 얘기가 영어로 잘못 번역돼 미국 야후 게시판 등에 올라간다. 국제적인 홍보효과만 생각했지 (나스닥에 상장하면) 주가관리 등 성가신 일이 많을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주춤한 것은 라그나로크의 후속작 출시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신작 효과가 본격화될 것이다.”

- 향후 계획은?

“올해는 그라비티에 있어 제2의 도약기가 될 것이다. 오는 9월 도쿄게임쇼에서 후속작인 라그나로크2를 공개한다. 성인층을 겨냥한 온라인게임 ‘레퀴엠’도 함께 선보인다. 이밖에 제휴업체들의 게임을 한곳에 모아 서비스하는 게임 포털 ‘스타이리아’도 올해 출범한다.”

- 라그나로크2는 전작과 어떤 점이 다른가?

“라그나로크2는 전작의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게임이다. 2D(2차원)와 3D의 중간 수준이었던 전작의 그래픽을 완벽한 3D로 업그레이드했다. 또 전투시 적을 타격하는 느낌을 한층 실감나게 처리했고 게임에 전략적인 요소를 더 가미했다. 전작의 장점인 온·오프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에도 신경을 썼다. 이 작품 외에도 신작 게임인 ‘레퀴엠’은 성인의 감성과 사회성을 반영한 새로운 스타일의 온라인게임이 될 것이다.”

김민구 주간조선 기자 roadrunner@chosun.com
입력 : 2005.09.04 17:3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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