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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코리아(下)] 신제품 나왔다면 '초고속 반응'
"휴대전화 물갈이 세계서 가장 빨라"
소니, 소비자 등쌀에 제품해명 진땀

지난해 12월 디지털카메라업계에는 ‘보라돌이 논쟁’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 그중에서도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소니는 당시 최고급 디지털카메라 기종인 DSC-F828을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출시했는데, 바로 그 ‘최신·최고 사양’의 디지털카메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이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는 그보다 1개월 뒤에 내놓았다.

소니가 야심차게 내놓은 그 제품에 대해 유독 한국 시장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F828로 사진을 찍으면 가끔 보라색이 지나치게 많이 비친다”는 불만이 소비자들로부터 터져나왔다. 그런 불만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하루 45만명이 방문하는 디지털 카메라 정보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dcinsde.com)에만 F828에 대한 글이 300개 가량 올라왔다.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사장은 “글마다 평균 300개 정도 댓글이 붙었던 걸 감안하면 그 논쟁의 열기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보라돌이 논쟁’의 참가자 중에는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온갖 자료를 첨부할 정도로 열정적인 소비자도 많았다. 이 때문에 소니는 오직 한국어 사이트에만 묻고 답하기 방식으로 해명의 글을 올렸다. 화사한 색상을 강조하는 제품의 특성 때문에 일어난 현상으로, 결함은 아니지만 이런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해 초기에 나간 제품에 대해서는 환불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소니코리아측은 “전 세계에서 이렇게 문제가 불거진 곳은 한국뿐”이라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제품에 대한 테스트마켓(시험대)으로 부상하는 한국. ‘디지털 코리아’ 힘의 원천은 IT, 디지털 분야에서 신기술과 신제품에 집착하는 3000만 한국 소비자들이다. 첨단제품일수록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남보다 먼저 구입해서 사용하려는 한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세계 메이저 IT·디지털 업체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국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열정 때문에 한국에서 성공한 제품은 다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국 휴대전화기의 성공 신화도 이런 소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 1월 기준으로 휴대전화 가입자 숫자는 3194만2157명. 시장조사 업체인 쇼스택 그룹은 세계 1위 휴대전화기 업체인 노키아는 작년 하반기 중 신제품을 13개를 내놓았고, 2위인 모토롤라는 31개 내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계 3위인 삼성전자는 노키아의 6배가 넘는 85개 모델을 내놓아, 종합경쟁력에서 삼성전자가 가장 앞선다고 평가했다. LG투자증권 노근창 연구원은 “한국이 세계에서 휴대전화기 출시 주기가 가장 짧은 나라”라며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려다 보니 한국 업체들의 신제품 개발 능력이 매우 높아졌다”고 말했다.

세계 노트북 업체에게도 한국은 ‘특별한 시장’이다. 인텔이 무선랜 기능을 갖춘 센트리노 칩을 내놓은 것은 작년 3월. 지난해 국내 노트북 판매량의 40%는 이 센트리노 칩이 내장된 제품이었다. 그러나 유럽·호주 등 서구 지역에서는 전체 판매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 시장의 이런 특성 때문에 HP는 센트리노 칩을 내장한 노트북을 전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먼저 출시했다.

한국 휴렛팩커드 이홍구 부사장은 “미국·일본·유럽 소비자들이 아직 너무 비싸다고 사지 않는 제품을, 한국 소비자들은 최신·최고 사양이라고 먼저 집어든다”면서 “최첨단·고성능 제품을 만들 때 이제 한국 시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첨단 디지털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 간의 정보 소통이 빠르고 활발한 것도 한국의 강점이다. 정보통신 인프라가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국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1125만여명. OECD 조사에 따르면 회원국 가운데 초고속인터넷 이용률도 한국이 23.17%로 가장 높다. 2위인 캐나다는 13.27%에 불과하다. 이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온라인상에 수백개(수천개?)의 디지털 제품 품평 사이트가 존재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은 “동북아 허브, 경제특구 등 다양한 국가경쟁력 제고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 나라의 저력은 바로 첨단 디지털 기술 제품을 마른 모래처럼 빨아들이는 첨단 소비자”라며 “동북아 허브나 경제특구 대신 디지털허브, 디지털특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강녕기자 young100@chosun.com
입력 : 2004.02.25 17:10 52' / 수정 : 2004.02.25 19:3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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