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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고려’는 같은 나라였다
고려의 고구려계승에 대한 종합적 검토
박용운 지음 | 일지사 | 174쪽 | 8000원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정작 잘 모르는 역사적 문제가 있다. 고려(高麗) 왕조는 왜 ‘고려’인가? 고구려(高句麗)를 계승했기 때문에 ‘구’자를 뺀 ‘고려’라고 국명을 지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일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런데 최근 여기에 딴지를 걸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소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강변하는 중국인들이다. 그들은 “고구려가 멸망한 지 250년 뒤에 일어난 ‘왕씨고려’는 고구려와 전혀 계승 관계가 없고, 고려는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옛 땅에서 건국한 왕조”라고 주장한다.

30여 년 동안 고려시대사를 연구해 온 저자(고려대 교수)는 이런 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학술적으로 반박한다. ‘고려’라는 명칭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구려가 곧 고려였다.” 연가 7년명 고구려 불상과 중원 고구려비 같은 고구려의 유물에는 분명히 ‘고구려’라고 씌어져야 할 자리에 ‘고려’라고 돼 있다. 그러니까 고구려가 존재하던 당시에 타국은 물론 고구려인 자신들조차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약칭이 아니었다. 저자는 “고구려가 어느 시점에 나라 이름을 정식으로 ‘고려’로 바꿨다”고 분석하고, 그 시점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한 서기 427년으로 본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고려 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천도 이후에도 일부러 ‘고구려’라 썼을 뿐이다.

‘고려사’ 첫머리에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作帝建)을 ‘고려인’이라 한 것은, 따라서 고구려 출신이라는 뜻이 된다. 태조의 출신지인 패서(浿西) 지역과 송악은 삼국시대에는 신라가 아닌 고구려 땅이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고려를 건국한 세력은 혈연과 지역 모두 옛 고려(고구려)를 기반으로 한 것이고, 즉위 직후 ‘고려’라는 국명을 정한 것은 고구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계승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출이라는 뜻이다. 태조가 “발해는 나의 친척의 나라(親戚之國)”라고 한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서희가 거란의 소손녕과 담판하면서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이므로 ‘고려’라 이름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한 것”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로써 명백해진다. 고려가 줄곧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선조로써 제사를 지낸 것이나 이규보·일연·이승휴 같은 문인들의 고구려 계승 의식에까지 이르면 ‘고구려?고려 계승’은 더욱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된다. 이것은 오대(五代)로부터 송·요·금·원·명까지 당시대를 살았던 중국인들도 자신들의 정식 사서(史書)를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답답한 점은, 고구려와 고려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려는 중국 학자들의 논거가 생각보다 훨씬 불충분할뿐더러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논문은 아예 읽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왕건의 성이 중국에 많은 ‘왕’씨니까 중국인이 분명하다”는 데 가서는 실소마저 나온다. 아예 한국사 전체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유석재기자 karma@chosun.com
입력 : 2006.06.16 22:4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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