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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농단하다 먹칠이 된 이름 '김안로'
조선 중종시대 정쟁의 주역 ’정유삼흉’ 몰려
계명대 소장 보물 ’사마방목’에 먹칠 흔적

2001-2002년 방영한 SBS 드라마 ’여인천하’(연출 김재형)는 조선 중종 시대 대윤(大尹)과 소윤(小尹)간 피비린내나는 정쟁을 소재로 했다.

여기에서 중종비 문정왕후(전인화)와 그의 친오빠 윤원형(이덕화)이 주축이 된 소윤은 역경 끝에 윤임(이효정)-김안로(김종결) 일파를 몰아낸다. 나아가 드라마는 시종일관 윤임-김안로를 간악한 인물로 그렸다.

실제 기록에서도 이 두 사람은 간악한 권신으로 묘사된다. 이 중 연안 김씨(延安金氏)인 김안로(金安老.1481-1537)는 호를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또는 퇴재(退齋)라고 하는데, 드라마에서는 ’희락당 대감’으로 아주 불렸다.

김안로는 21살 때인 1501년(연산군 7)에 진사(進士)가 되고, 중종 원년(1506)에는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급제하면서 관직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성균관 전적과 홍문관 수찬,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교리 등을 거쳐 직제학, 부제학, 대사간으로 승진을 거듭했다.

1519년 기묘사화에서 조광조(趙光祖)가 몰락하자 이조판서에 발탁됐고, 그의 아들 김희(金禧)가 중종 딸인 효혜공주와 결혼하자 권력을 농단했다.

하지만, 1524년, 영의정 남곤(南袞)과 심정(沈貞) 등의 탄핵을 받아 경기 풍덕에 유배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530년, 남곤이 죽자 복직해 도총관, 예조판서, 대제학 등을 거쳐 1534년에는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김안로는 뒷날 인종으로 즉위하는 동궁(東宮.세자)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여러 차례 옥사를 일으켜 정광필(鄭光弼), 이언적(李彦迪) 등을 유배 보내거나 사사했으며, 중종 후궁인 경빈박씨와 그의 아들 복성군(福城君) 또한 죽음으로 몰았다.

나아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 친오빠들인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 또한 권력에서 몰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김안로도 1537년 문정왕후를 중전 자리에서 몰아내려다가 도리어 중종의 역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사사 됐다. 당시 기록에는 이런 김안로를 허항(許沆), 채무택(蔡無擇)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凶)이라 꼽았다.

지난달 문화재청이 보물 1464호로 지정한 ’홍치십사년신유사마방목’(弘治十四年辛酉司馬榜目)이라는 계명대 동산도서관 소장 고문헌 1책(가로 17.1×세로 29.3㎝)은 김안로에 대한 조선 당대 지식인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마방목(司馬榜目)이란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 한데 김안로는 홍치(弘治) 14년이자, 신유년(辛酉年)인 조선 연산군 7년(1501)에 시행한 생원ㆍ진사 시험에 합격한 까닭에 그 합격자 명단인 이 사마방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때 친 시험에서 시험관인 주시관(主試官)으로는 일소(一所. 제1고시장)에 우참찬 유순(柳洵)과 호조참판 김심(金諶), 이조정랑 남곤(南袞) 등 6명이 배치됐고, 이소(二所. 제2고시장)에는 대사헌 성현(成俔)을 필두로 6명이 맡았다.

시험 결과 생원시에는 이수정(李守貞)이 장원을 했고, 진사시 장원은 김안국(金安國)에게 돌아갔다. 김안로는 진사시 1등 5명 중 한 명이었다.

한데 이 사마방목에는 시험관인 남곤(南袞)과 함께 진사방(進士榜) 1등 중 한 명인 김안로(金安老)라는 이름에 모두 먹칠을 해 놓았다.

이런 먹칠이 정확히 누구에 의해, 또 언제 이뤄졌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김안로의 경우 역적으로 간주돼 사사된 이상, 그 직후 어느 무렵에 이런 역적과 이름을 같이 올릴 수 없다 해서, 그 이름에다가 누군가 먹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사마방목은 당시 진사시험 합격자 중 한 명인 문의공(文毅公) 김식(金湜.1482-1520) 후손가에 전해지다가 계명대로 들어간 것으로 예조에서 직접 간행해 반포한 ’초주갑인자본’이다.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6.05.15 08:46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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