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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인터뷰] ⑥신개념을 추구하는 안무가 정영두
남다른 창작법에 국내외서 주목

▲ 새해 활약이 기대되는 안무가 정영두의 작품 '내려오지 않기'. /연합
요즘은 잘 안 쓰지만, 안무가 정영두(丁永斗.31)를 보면 ’앙팡 테리블’(L’enfant terrible)이란 말이 생각난다. 품성이나 외모는 무난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무대에 대한 진지성과 열정, 그리고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 무대에서 급속도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서운 아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지난 몇 년을 정신없이 달려온 그는 올 11월에도 프랑스의 유명 단체인 조제프 나주 무용단과 베르나르 몽테 무용단에서 워크숍을 해주고 돌아왔다. 새해에도 이미 6-7건의 프로젝트가 준비돼 있다. 우선 1월말에는 뉴욕에서 열리는 미국 공연예술프리젠터협회(APAP) 마켓에서 그의 인기작 ’불편한 하나’를 선보이고, 5월에는 일본의 무용기획자 다카야 세이지(高谷靜治)의 주선으로 교토(京都)에서 일본인 스태프와 함께 신작을 만들어 올린다.

하반기에는 프랑스 르와요몽 재단 주최 워크숍 참가가 논의중이며 가을로 예정된 LG소극장 개관 기념 공연, 도쿄 댄스 비엔날레 공연 및 워크숍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작이 일곱 편에 불과하고, 안무가로서의 본격적 시험대라고 해야 할 대형 작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물론 대작을 만들 나이나 여건도 아니지만)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비상한 눈길을 보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에게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무엇’에 대해 정영두 자신은 “잘은 모르겠지만, 몸에 대한 제 나름의 끊임없는 탐구방식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이 겸손하고 평범한 대답을 좀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몸 움직임과 테크닉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내용 면에서도 ’몸이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해 표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발표될 때마다 새로운 동작실험의 결과들을 보여준다. 그것을 안무가는 “때마다 다른 몸으로 들어간다”고 말한다.

대충 ’실험적이고 난해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현대무용 쪽에서 안무력 하나로 고정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정영두의 존재는 우리 무용계에 시사점을 던진다.

즉, 세계 수준의 무용수가 다수 배출되고 있는 데 반해 창작가는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곤하고 불만족스러운 우리 무용계에서 이제 비로소 ’작가 시대’가 서서히 열리고 있다는 것. 선배들이 어렵게 세워놓은 토대에서 정영두를 비롯한 30대 안무가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것이 요즘 한국 무용계의 양상이다.

무용가로서 정영두는 좀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전라남도 영암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직후 서울에 있는 ’극단 현장’에 들어가 연극을 했다. “영암이야 시골이라지만, 광주 쯤에라도 무용학원이 있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훨씬 전부터 춤을 배웠을 텐데” 출발이 좀 늦었다. 그러나 연극에서 닦은 저력과 그 자신의 철학적ㆍ사색적 취향이 어울려 그의 작품세계는 무용만 바라보고 살아온 대다수의 무용가들보다 오히려 깊이있고 다채롭다.

그런 그에게는 무용이라는 장르에 인문학적 혹은 전반적 의미의 문화담론이 형성돼 있지 못한 점이 가장 답답하다. “무용 혹은 무용계에는 인문학적 텍스트가 깔려 있질 않지요. 그러므로 각자가 고민해가면서 스스로 세계관과 가치관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렇다. 기본이 약한 동네, 그것이 무용의 지적, 구조적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

우리 무용계의 창작력은 지금 중요한 상승기에 있다. 적절한 지원과 여건이 받쳐주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창조의 힘이 폭발하면서 세계의 무대를 치받고 올라설 것이다. 이 엄청난 도약의 기회를 구체적 현실로 만드어줄 주역은 소수의 40대 안무가와, 그들보다는 약간 더 많은 수의 30대 안무가들이 될 것이다.

2004년 11월 그는 파리에 있는 일본문화원에서 공연을 했다. 같은 해 2월 요코하마 댄스 컬렉션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던 것. 이 대회의 공동주최자인 일본측과 주일 프랑스대사관의 주선으로 파리에서 공연을 했는데, 경비가 좀 모자랐다.

“일본문화원이 한국 정부기관에 연락을 취해 사정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일본문화원에서 공연을 하는데 왜 한국정부가 돈을 내냐는 거였죠”

이런 부끄럽고 답답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 안무가들의 세계 진출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은 미국에서 열리는 한국도자기전시회에도 서슴없이 후원금을 냈는데.

정영두의 걱정은 외부의 지원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훌륭한 기획자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금전적ㆍ행정적 지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무용인들도 바뀌어야 합니다. 자신있고 패기 넘쳐야 할 젊은 무용가들이 남이 뭐라지도 않는데 자기검열에 빠져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작품을 이렇게 짜면 교수님이 싫어하시지 않을까...그건 곤란하죠”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이건만 물질적 형편은 한 마디로 형편없다. 현재 단원 6명 짜리 ’두 댄스시어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지만 언제 무용을 중단해야 할 지 모를 위기감 속에서 산다. “글쎄요, 고정된 공간이라도 있다면 연습을 포함한 일상활동을 좀더 잘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저희의 춤 방법론도 좀더 확고하게 세울 수 있을 것같구요”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12.22 09:2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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