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작게 100자평 쓰기  블로그 스크랩  이메일  프린트 

가슴에 저며드는 저항과 서정의 노래
위대한 두 영혼의 만남, ’모두의 노래’

아마 우리에게는 아직 없는 것같은데, 브라질에는 빌라-로보스가 있고 그리스에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 1925-)가 있다. 민족의 영혼과 토속의 냄새가 물씬 묻어나면서도 서구의 음악어법과 잘 어울리는, 그런 작곡가 말이다. 하기야 그리스나 브라질은 반쯤 서구이고, 우리는 아주 다르니까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말이다.

테오도라키스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 ’그리스인 조르바’ ’페드라’ 등 그리스의 토속성과 서정미가 어우러진 음악으로 국내에도 팬들이 제법 많은 인물이다. 특히 작년 여름 아테네 올림픽을 계기로 국내 언론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그의 숱한 명곡들 가운데는 그리스어가 아닌 스페인어 가사로 된 노래가 하나 있다. ’행동하는 지성’의 전형이자, 중남미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는 칠레 출신 빠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73)의 시편에 오라토리오 형식의 곡을 붙인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 깐또 헤네랄).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당시 우리에게는 ’민중의 노래’ 혹은 ’대중의 노래’로 발췌번역, 소개된 바 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J’accuse)’를 연상시키는 ’나는 고발한다’(Yo acuso)라는 명연설(1948년)로 대통령의 변절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한 네루다가 칩거와 피신생활 틈틈이 써내려간 불멸의 대서사시이다.

중남미의 지리와 역사, 전설과 문명, 미국의 패권주의와 자본에 유린당한 처참한 양상, 그리고 핍박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연히 일어선 민중지도자들의 모습을 절절하고 웅장한, 그리고 때로는 섬세하고 서글픈 어조로 읊조린 이 시편이 그리스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저항운동가인 테오도라키스의 손을 거쳐 불후의 명곡으로 남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1970년 테오도라키스는 파리로 향한다. 청년 시절 유학생으로 청춘을 불태웠던 곳이었건만 군사정권에 의해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망명길에 오른 그에게는 꼭 반가운 재회만은 아니었으리라.

거기서 만난 인물이 네루다. 체코의 민중작가 얀 네루다(Jan Neruda)에 매료돼 자신의 이름마저 바꿔버린 이 위대한 시인은 마침 칠레 최초의 민중정권을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 주재 대사로 임명 받은 터였다. 과거 정치범으로서 망명과 도피의 신산한 날들을 보냈던 그는 그리스에서 온 이 21년 연하의 음악가에게서 동지애와 함께 정열과 에너지, 그리고 아름답고 깊은 영혼을 발견했다.

테오도라키스는 네루다의 주선으로 칠레를 방문, 민중이 일어나 의로운 사회를 만들려 애쓰는 모습을 목도한다. 아울러 네루다의 수많은 시가 노래로 불리는 것을 본다. 그러면서 그는 ’모두의 노래’를 음악으로 승화시키기로 결심한다. 아옌데 대통령은 소장하고 있던 네루다의 시집을 꺼내 들고 몇 편을 직접 낭송하면서 그를 격려했다.

초연은 197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있었다. 청중은 테오도라키스와 네루다를 연호했고, 테오도라키스는 감격에 겨워 전화기를 들었다. 류머티즘이 도져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고 있던 네루다와 기쁨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테오도라키스는 그 다음 차례로 예정돼 있던 칠레 공연에서는 시인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 공연은 무산됐다. 칠레 정국은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고, 테오도라키스는 베네수엘라에서 칠레의 쿠데타 소식을 듣는다. 다음 공연 예정지인 멕시코에서는 아옌데의 사망 뉴스에 이어 네루다마저 쿠데타 이후 병세가 악화돼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테오도라키스가 곡을 계속 가다듬고 있던 중에 그리스의 군부독재가 종식되자 그는 귀국한다. 1975년 꿈에 그리던 조국에서의 공연을 하게 됐을 때, ’모두의 노래’에는 네루다의 시집에 없는 곡 하나가 추가됐다. ’네루다를 위한 진혼곡’(Neruda Requiem Eternam)이었다.

한편 칠레는 여전히 군부독재 아래서 신음하고 있었다. 테오도라키스의 마음 한구석은 늘 그늘져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드디어 칠레에도 민선정부가 들어섰고, 그는 1993년 비로소 칠레에서 ’모두의 노래’를 울려퍼지게 할 수 있었다. 칠레 초연 계획이 무산된 지 꼭 20년 만의 일이었다.

네루다 탄생 100주년이던 2004년 테오도라키스는 팔순이 된 몸을 이끌고 다시금 ’모두의 노래’를 지휘했다. 이번엔 스페인에서였다. 마리아 파란두리를 비롯해 1975년 그리스 공연의 주요 멤버들이 모두 참여했다. 그의 나이로 보아 직접 지휘로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국내 최고의 월드뮤직 전문 레이블인 알레스 뮤직이 낸 그리스 FM레코드의 라이선스 음반은 1981년 뮌헨 올림픽 홀에서 테오도라키스가 직접 지휘하고,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와 페트로스 판디스(Petros Pandis)가 성 야곱 합창단(St. Jakob’s Chorus)과 호흡을 맞춰 노래한 실황을 CD 2장에 담은 것이다. 연주는 스톡홀름 오케스트라.

장대하고 웅장한 작품 스케일에 걸맞게 다양한 민속악기들이 어울려 내는 사운드가 일품이며, ’테오도라키스 음악의 최고 해석자’로 꼽히는 파란두리와 판디스의 가창은 격정과 흥분, 절망과 신음, 저항과 희망을 오가며 듣는 이의 영혼을 어루만진다. 다른 데서 나온 몇몇 음반에 비해 클래식 음악보다는 월드뮤직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 노래들을 듣다보면 비슷한 주제, 비숫한 형식의 성악곡인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하라’가 떠오르는데, ’광주…’보다는 좀더 서정적이고 감싸안는 맛이 있다.

70여쪽에 달하는 해설지에는 귀한 자료가 많이 담겨 있으며, 특히 ’모두의 노래’가 국내 최초로 완역돼 원문과 함께 실려 있다. 번역은 평전 ’빠블로 네루다’(애덤 펜스타인. 생각의 나무)의 역자인 서울대 김현균 교수와 라틴 문화에 대해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온 우석균(서울대 언어교육원) 박사가 담당했다.

참고로 트랙 목록을 덧붙인다.

CD 1에는 ①Algunas Bestias(짐승들) ②Voy A Vivir(나는 살리라) ③Los Libertadores(해방자들) ④A Mi Partido(나의 당에게) ⑤Lautaro(라우따로) ⑥Vienen Los Pajaros(새들이 온다), CD 2에는 ①Sandino(산디노) ②Neruda Requiem Eternam(네루다 진혼곡) ③United Fruits Co.(유나이티드 프루츠社) ④Vegetaciones(식물들) ⑤Amor America(사랑하는 아메리카) ⑥Emiliano Zapata(에밀리아노 사빠따) ⑦America Insurrecta(반란의 아메리카).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12.21 11:52 58'

100자평 쓰기  블로그 스크랩  이메일  프린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