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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홈페이지, 조선일보 기사 표절

KBS가 자사 홈페이지에 '명성황후' 관련 조선일보 기사를 내용은 물론 사진과 그래픽까지 무단으로 베낀 기사를 올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KBS는 조선닷컴이 표절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게재한 지 40여분이 지난 뒤, 관련 기사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연합 뉴스 기사로 대체하고 문제가 된 그래픽과 사진은 삭제해 다른 자료로 대체했다.

문제의 기사는 KBS 뉴스 홈페이지(news.kbs.co.kr)에 올려 놓은 ‘이토 히로부미 총리, 명성황후 시해 개입’. 이 사이트 ‘인터넷 독점’ 코너에 지난 6일부터 7일 오후까지 톱으로 게재한 이 기사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각료들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일본 국회 도서관 헌정 자료실에서 발굴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KBS 뉴스 홈페이지(news.kbs.co.kr)에 올려 놓은 ‘이토 히로부미 총리, 명성황후 시해 개입’.기사
그런데 기사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조선일보가 지난 6일자 A1면과 A21면에서 단독 보도한 기사를 표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발굴됐습니다”라는 기사 도입부와 함께 “무쓰 외상에게… 있습니다”라는 네 번째 단락,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습니다”는 일곱 번째 단락 등 총 다섯 개 단락 내용은 조선일보 기사와 토씨까지 똑같다. 조선일보 기사에 담긴 전문가 설명까지 고스란히 옮겨 놓았고, ‘…발굴됐다’가 ‘…발굴됐습니다’로 표현되는 등 문장 어미만 다르다.

KBS 홈페이지 기사의 ‘이토 히로부미 총리, 명성황후’라는 제목도 6일자 조선일보 기사 제목과 똑같다. 요시카와(芳川顯正) 사법상의 1895년 6월20일자 편지 주요 부분에 빨간 밑줄이 그어진 사진도 조선일보 지면에 실린 것과 똑같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사건 관련자’ 계통도를 그린 그래픽의 경우 조선일보가 ‘가’판(초판)을 제작하면서 잘못 그린 그래픽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조선일보는 ‘가’판 제작 당시 그래픽에서 이노우에 전(前) 주한공사와 미우라 주한공사를 ‘노무라 내상’ 아래에 잘못 표시했지만, 이후 판에서 ‘무쓰 외상’ 아래로 수정 게재했다. 현재 조선일보 최종 지면과 인터넷 기사에는 모두 정확히 수정된 그래픽이 실려 있다.관련 기사를 최초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는 “초판을 제작한 뒤 그래픽에 오류가 발견돼 바로 수정했다"며 "KBS는 수정되기 전 조선닷컴에 게재한 기사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가 처음에 잘못 그린 그래픽을 그대로 실은 KBS 기사(왼쪽). 조선일보 시내판(오른쪽)은 이노우에 전 주한공사와 미우라 주한공사가 노무라 내상이 아니라 무쓰 외상 지휘를 받는 것으로 수정한 그래픽을 내 보냈다.


조선일보 6일자 1면 기사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개입”

뒷받침하는 근거 사료 일 국회도서관서 발굴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입력 : 2005.10.05 20:03 55' / 수정 : 2005.10.06 06:11 05'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 총리 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각료들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발굴됐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8일로 꼭 110년을 맞는다. 명성황후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인 다큐서울 정수웅 대표는 5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요시카와(芳川顯正) 사법상(司法相법무장관)의 1895년 6월20일자 편지를 공개했다. 무쓰(陸奧宗光) 외상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요시카와는 이노우에 주한공사에게 “(이토 총리에게) 미봉책은 단연히 포기하고 ‘결행의 방침’을 채택하도록 강하게 권유하라고 말했다”며 “이쪽의 희망대로 움직여갈 것 같다”고 쓰고 있다.

일본 근대사 연구자인 고마쓰(小松 裕) 구마모토대 교수는 “‘미봉책’은 조선 정부에 대여금을 줘서 회유하려는 이노우에의 방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결행의 방침’은 무단적인 수단으로서의 해결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정부의 개입을 부인해왔고, 국내 학계에서도 당시 주한 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단독 범행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주도설 등이 제기돼왔을 뿐이다. 때문에 당시 일본 최고 지도자였던 이토 등 각료의 개입을 암시하는 이번 사료는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이 서한에 대해 5일 “사법상과 외상이 편지로 이런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내각 차원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의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토의 시해사건 관여를 입증하는 자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KBS기사 원문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개입”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일본 총리 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각료들이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발굴됐습니다.

오는 8일과 9일 이틀간 KBS 1TV 'KBS 스페셜'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이 사료는 요시카와(芳川顯正) 사법상(司法相법무장관)의 1895년 6월 20일자 편지입니다.

오늘의 인터넷독점에서는 이 편지가 가지는 의미와 함께 오는 8일로 110주년을 맞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 요시카와의 편지

무쓰(陸奧宗光) 외상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요시카와는 이노우에 주한공사에게 “(이토 총리에게) 미봉책은 단연히 포기하고 ‘결행의 방침’을 채택하도록 강하게 권유하라고 말했다”며 “이쪽의 희망대로 움직여갈 것 같다”고 쓰고 있습니다.

일본 근대사 연구자인 고마쓰(小松 裕) 구마모토대 교수는 “‘미봉책’은 조선 정부에 대여금을 줘서 회유하려는 이노우에의 방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결행의 방침’은 무단적인 수단으로서의 해결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관되게 정부의 개입을 부인해왔고, 국내 학계에서도 당시 주한 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단독 범행설,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주도설 등이 제기돼왔을 뿐입니다. 때문에 당시 일본 최고 지도자였던 이토 등 각료의 개입을 암시하는 이번 사료는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이 서한에 대해 5일 “사법상과 외상이 편지로 이런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내각 차원에서 명성황후 시해를 의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토의 시해사건 관여를 입증하는 자료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후략)


남승우기자seraphc@chosun.com
입력 : 2005.10.07 17:19 14' / 수정 : 2005.10.07 20:57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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