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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차가운 메스와 시인의 심장이 만나다
연대 의대, 문학 강의 시작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입력 : 2003.09.14 16:40 00'

‘문학과 의학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국내 의과대학에서는 처음으로 연세대 의대에서 문학 강의가 시작됐다. 9월부터 개강한 이 강좌명은 ‘문학과 의학’이다. “의학 역시 인간을 다룬다는 면에서 인문학적 요소가 적지 않다”는 생각에서 출발,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의학교육을 인간화한다”는 취지다. 각 의과대학의 예과에서 배우는 ‘의학개론’에도 비슷한 과정이 짧게 삽입돼 있지만, 이처럼 ‘문학과 의학’이라는 강좌 이름을 갖고 둘 사이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는 국내 대학에서 전례가 없었다.

수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이 강좌는 지난 3일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추석 휴강을 넘긴 17일부터 첫 토론 강의가 개시될 예정이다. 이 시간에는 의사·시인 마종기, 언론인 출신 소설가 김훈, 문학평론가 정과리(연세대 국문과 교수) 같은 유명 문인들이 참여한다.

이 강좌를 수강 신청한 오창명(본과 2학년)씨는 “처음 개설되는 교양수업인 데다 유명하신 분들에게 직접 수업을 듣는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면서 “의대 내에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의 생각만 교류하는 차원을 벗어나서 인문계 같은 다른 쪽 사람의 사고방식과 마주쳐보자는 뜻에서 이 과목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본과 2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강의를 신청한 학생은 21명인데 “전공도 아닌 선택과목으로서는 많은 학생이 몰려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학교측은 밝혔다.

문과대학과 의과대학 교수들이 합동강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강의에는 문과대학 쪽에서 신경숙(영문과), 유석호(불문과), 김진영(노문과), 김용민(독문과), 유중하·김장환(중문과), 의과대학 쪽에서 이병훈(러시아문학 전공) 박사, 손명세(예방의학과), 이무상(비뇨기과), 김동구(약리학과), 오병훈(정신과), 김흥동(소아과), 김순일(외과) 교수가 참여한다. 강좌를 대표하는 주임교수는 이무상 교수이고, 강의를 주도하는 교수는 마종기 시인, 손명세 교수, 이병훈 박사다.

미국에 체류 중인 마 시인은 10월 말까지 이 강의에 참여하기 위해 연세대 의대 초빙교수로 발령을 받고 서울에 와 있다. 마 시인은 연세대 의대 졸업생이다. 이병훈 박사는 이번 강좌를 디자인하기 위해 문학 전공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의과대학에 채용됐다.

이번 강의에서는 세계문학사에 적잖은 성취를 남긴 ‘의사·작가’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가령 ‘가르강튀아’를 쓴 프랑스의 프랑수아 라블레,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영국의 존 키츠, 서머싯 몸, 코넌 도일, 중국의 노신, 독일의 한스 카로사, 고트 프리트 벤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의사였던 시인작가들로서 의사이기에 겪을 수 있었던 진료와 수술 같은 체험을 작품에 농밀하게 녹여내면서 의학적인 세계관과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작가론’이 각론이라면 ‘의료문학론’은 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병훈 박사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문학과 의학의 영원한 테마”라며 “인간(환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학문이 의학이기 때문에 의학은 곧 인문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의사의 진찰은 ‘대화(언어)’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중요한 갈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의료문학론’은 바로 그러한 점들을 심도 있게 다뤄볼 예정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하버드대 의대를 중심으로 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국내에서 의사·문인을 겸직한 경우로는 마종기(산부인과), 허만하(방사선과), 서홍관(가정의학과), 강경주(산부인과), 김춘추(백혈병 전문의) 시인을 들 수 있다.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의 삶을 그린 소설가로도 알려진 한의사 이철호씨는 문학을 의술에 비유, “문학이야말로 인간의 병든 심신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비뚤어진 심성까지도 바르게 잡아주는 종합 의술행위”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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