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는 음악 잡지에 이런 내용도 실리곤 했다. ‘아티스트와 가수는 구분되어야 한다.’ 노래만 하는 가수와 직접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는 예술적 능력 차이가 분명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다른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런 평론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함부로 뱉었다간 소위 말하는 ‘꼰대’라는 비판을 듣기 십상이다. 안 그래도 2010년대 들어서며 아이돌을 진지하게 조명하는 평론 글들이 활발했다. 기존 평론의 태도에 반기를 든 거꾸로 가는 흐름이었다. 동료들과 사석에서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눌 때도 이제 상업적 음악과 예술적 음악, 대중성과 음악성,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엄격히 구분 지어 말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여러모로 둘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는 시대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중적인 진영의 음악성이 결코 낮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발매되는 케이팝 아이돌의 작·편곡과 사운드 퀄리티는 팝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곡이 멤버의 자작곡인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인디 음악보다 앞서 언더그라운드 흐름을 캐치하기도 한다. 뉴진스는 프로듀서 이오공의 도움으로 팝계에서도 주류 음악에 섣불리 접목하지 않는 지하의 댄스 장르들을 선보였다. 해외에서 비평적 반응이 좋았던 데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비주류 장르나 전설들의 작품에서 똑같이 대중적인 시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도 음악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마이클 잭슨도 한때는 아이돌이었다. 비틀스의 음악엔 대중적 팝의 요소가 가득하다. 전자음악에 한 획을 그은 스티비 원더는 신시사이저 패치를 만들어주는 편곡자와 함께 작업했다. 공통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엄밀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룹 사운드 잔나비의 화제의 신곡 ‘사랑의 이름으로!’에 에스파 카리나가 참여한 것은 이러한 최근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인디 혹은 밴드 진영을 대표하는 잔나비가 아이돌 그룹 멤버와 함께 노래했고 그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걸었다. 굳이 둘 사이를 편견으로 가르려 하지 않는 최근 흐름의 반영이다. 록 팬들 가득한 페스티벌 무대에 아이돌 그룹이 서는 일이 흔해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아이돌은 음악적 이미지를 얻고 밴드는 높은 화제성을 가져가는 공생의 맥락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이렇다 할 논란거리가 되지 못하는 게 최근의 분위기다. 인디와 주류의 경계가 계속 흐릿해져 가고 있다. 얼마 전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에도 걸 그룹 트와이스가 오프닝 공연을 맡았다. 요즘 음악 팬들 사이에는 ‘편견 없음’의 태도가 다른 가치에 우선하는 것 같다.
https://youtu.be/M8oCsI0iG7Y?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