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가 14일 뉴욕 양키스 원정 경기에서 4회초 솔로 홈런을 치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6회초에도 3점 홈런을 때려 지난해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1경기 2홈런을 기록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정후가 뉴욕을 흔들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27)는 14일(한국 시각)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원정 경기 3차전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MLB 데뷔 후 첫 1경기 2홈런. 내용도 추격 홈런과 역전 홈런. 알토란 같았다. 3타수 2안타(2홈런) 4타점 2득점 볼넷 1개. 자이언츠는 5대4로 역전승하면서 양키스 3연전을 2승 1패로 마무리했다. 경기 MVP(최우수 선수)는 당연히 이정후에게 돌아갔다. 자이언츠는 11승 4패로 내셔널리그(NL) 서부 지구 2위를 고수했다.

그래픽=양진경

아직 초반이긴 하지만 이정후는 적응기를 넘어 도약기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이날 3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 1회초 첫 타석은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4회초 두 번째 타석. 0-3으로 뒤지고 있던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상대 좌완 선발투수 카를로스 로돈(33)의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 우중간 담장을 넘겼다. 로돈은 MLB 11년 차로 지난해 16승 9패 평균자책점 3.96을 기록한 투수. 올해 연봉이 2783만달러에 이른다. 2022년 사이영상 5위(13승 5패 2.37), 2023년 6위(14승 8패 2.88)를 기록한 바 있다.

올 시즌 1승 3패 5.48로 부진하긴 하지만 리그 정상급 기량 투수인데 이정후가 이날만큼은 로돈을 압도했다. 6회초 1-3으로 뒤진 1사 1-2루에서 또다시 로돈을 상대로 높은 몸쪽 커브를 받아쳐 역전 3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미국 언론들은 “양키스 홈팬들이 가득한 양키스타디움이 동물원에서 도서관으로 변했다”고 묘사했다. 강렬한 한 방이었다.

로돈이 지난해 32경기 31피홈런(MLB 전체 2위), 올해 4경기 5홈런(1위)으로 최근 급격하게 ‘홈런 공장 공장장’이 되버린 처지이긴 하지만 좌완 투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정후 선구안과 정확한 타격 능력이 빛난 순간이었다. 로돈은 지난해 31홈런 중 좌타자에게 맞은 건 3개, 올 시즌엔 아직 없었는데 이날 1경기에서만 좌타자 이정후에게 2개를 맞았다. 로돈을 상대로 1경기 2홈런을 때려낸 좌타자는 이정후가 처음이라고 한다.

미 현지 중계진은 “마치 베이브 루스, 미키 맨틀, 레지 잭슨(양키스 전설적인 좌타자들) 같다”면서 감탄사를 보냈다. 로돈과 애런 분 양키스 감독도 찬사를 보냈다. 이들은 “이정후에게 일부러 경기 내내 커브를 보여주지 않았다. 싱커와 직구로 2스트라이크를 잡고 커브로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을 잡으려고 했는데 로돈의 커브를 이정후가 응징했다”고 전했다.

2002년 내셔널리그(NL)와 아메리칸리그(AL) 팀 간 경기(인터리그)가 시작된 뒤 양키스 원정에서 자이언츠가 우위(3연전 중 2승)를 점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이언츠는 그동안 4번 있었던 양키스 원정 3연전을 다 1승 2패로 내준 바 있다.

이정후는 이번 양키스 3연전을 9타수 4안타 7타점 5득점으로 마무리하면서 주요 타격 부문 리그 최상위권으로 약진했다. 타율은 0.352로 NL 2위까지 상승했다. 1위는 케이버트 루이즈(워싱턴 내셔널스) 0.373. 정말 타격왕을 노려볼 만한 분위기다. 강타자 지표인 OPS(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것)는 1.130. NL 1위이자 MLB 전체에서 양키스 홈런 타자 애런 저지(1.228)에 이어 2위다.

MLB닷컴은 “이정후 첫 뉴욕 원정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라며 “시즌 초반이지만 눈부신 활약으로 올해 최고 돌풍을 예고하는 스타 중 하나로 보인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 잘 적응할지 의문스러운 시선들도 빠르게 날려버렸다”고 평가했다. 밥 멜빈 자이언츠 감독도 “어떤 투수 공도 맞힐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처음 상대하는 투수를 상대로 정확한 타격 능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15일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연전에 출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