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대전 구장. 한화는 선두 LG에 5-2로 앞서자 9회초 수호신 김서현(21)을 마운드에 올렸다. 이틀 연속 등판.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3타자를 맞아 삼진 2개를 잡아내며 완벽하게 승리를 지켰다. 최고 구속은 159㎞까지 나왔다. 시즌 9세이브째. 평균자책점은 0.57까지 내려갔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김서현은 애증의 존재였다. 서울고 시절 150㎞를 웃도는 강속구를 뿌리며 주목받았다. 2023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으로 한화에 입단했으나 제구력이 문제였다. 2023년 첫해 20경기 나와 평균자책점 7.25. 2년 차인 지난해도 사사구를 남발(38과 3분의 1이닝 36개)하고 장기였던 속구마저 140㎞대로 떨어져 계륵처럼 취급됐다.
실패한 유망주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회의감이 들 무렵. 작년 6월 김경문(67)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기(轉機)를 맞았다. 김 감독은 김서현을 토요일 경기 후 따로 만났다. “저렇게 유망한 선수를 방치할 수 없다”면서 도움을 주려 한 것. 평소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김 감독은 “힘든 게 뭐냐. 뭘 도와주면 되겠냐”고 상담역을 자처했다. 김서현은 “고민이 많아 잠이 잘 안 온다”면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김 감독은 “네 나이 때는 그저 열심히 하고, 잘 자고, 많이 먹고, 러닝 많이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젊은 녀석이 감독이랑 비슷한 시간을 자면 어떡하냐”고 웃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이후 양상문 투수 코치와 ‘김서현 부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양 코치도 이전부터 김서현이 좀처럼 날개를 펴지 못하는 걸 보며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자신감. 부진이 길어지다 보니 투구 폼을 자주 바꾸고 이런 무원칙이 되레 악화의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가장 편안한 폼으로 과감하게 던져라”면서 “젊은 투수는 변화구나 기교보다 구위와 직구 위주로 승부하라”고 주문했다. 핵심은 (자기) 구위를 믿고 밀어붙이라는 정신 재(再)무장이었다.
그런 훈련을 거듭하자 김서현은 강속구 투수로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구속이 150㎞를 다시 넘겼고 강속구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다. 프로 와서 새로 시도한 여러 변화구를 버리고 강속구와 슬라이더 단 2개 구종으로 승부구를 단순화했다. 그러자 작년 하반기부터 성과가 나타났다. 상반기 1홀드조차 올리지 못한 그는 작년 7월 1군에 복귀한 후 하반기 1승 10홀드를 올렸다.
올 시즌엔 개막 초기 필승조 불펜으로 출발했으나, 원래 마무리였던 주현상이 부진하자 새 마무리로 낙점됐다. 지난 3월 29일 KIA전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첫 세이브를 올린 뒤 철벽 투를 계속해서 꽂았다. 개막 후 13경기 연속 무실점. 4월 25일 KT전에서 첫 실점, 첫 패전도 겪었지만 이후 본색을 되찾고 무적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구원(세이브) 부문은 공동 1위(박영현·김원중). 사사구는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내려갔고, 피안타율은 0.125에 불과하다.
한화가 타격(30일 현재 팀 타율 0.240 리그 8위)이 다소 주춤함에도 돌풍을 일으키는 밑바탕엔 강력한 선발 투수진과 김서현을 앞세운 불펜의 힘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