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원조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을 둘러싼 하이브와 카카오의 분쟁 1라운드에서 하이브가 판정승을 거뒀다. 법원이 “카카오가 SM의 신주(新株) 발행 등을 통해 지분 9%를 취득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뉴스1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김유성)는 3일 이수만 전 SM 총괄 프로듀서가 SM을 상대로 낸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재판에서 이 전 총괄의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전 총괄은 지난달 8일 “SM 현 경영진이 카카오에 신주와 전환사채(총 9.1%)를 발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제3자에 신주를 배정하려면 재무 구조 개선 등 정당한 ‘경영상의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SM의 결정은 오로지 최대 주주인 이 전 총괄을 회사에서 몰아내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SM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주 및 전환사채를 발행할 필요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신주 발행으로) 기존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거나 불이익을 받을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했다. 또 카카오의 지분 취득 시도에 대해 “SM 경영권 귀속과 관련한 분쟁 가능성을 현실화한 행위로, 이 전 총괄의 SM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신주 발행 목적 자체가 순수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뜻이다.

법원 가처분 신청 인용 후 SM 지분 구조

이로써 하이브와 카카오의 지분율 싸움은 하이브 쪽으로 기울게 됐다. 하이브 측의 지분율은 현재 18.5%(이 전 총괄 지분 포함)다. 여기에 하이브가 지난 1일까지 공개 매수한 SM 지분이 더해지면 지분율은 최대 43.5%까지 오를 수 있다. 다만 최근 SM 주가가 공개매수가(12만원)보다 높아지면서 공개 매수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하이브의 공개 매수 결과는 오는 6일 공시될 예정이다.

카카오는 이날 법원 결정으로 공식적인 SM 지분이 ‘제로(0)%’가 됐다. 당초 오는 6일 신주 발행분을 취득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된 것이다. 다만 일각에선 카카오의 우호 지분을 계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기타 법인’으로 분류되는 투자자들이 총 5.5%의 SM 지분을 장내 매수했는데, 상당수가 카카오와 우호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카오 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도 하이브 측 지분에 비해 열세다. 게다가 최근 금융 당국은 ‘기타 법인’의 매수가 하이브 측의 공개 매수를 방해하기 위한 불공정거래인지 조사하는 중이다.

카카오가 ‘맞불 공개 매수’로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카카오가 현재 주가(12만9200원)보다 높은 13만~14만원대 이상의 공개 매수가를 제시해 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성국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번 법원 결정으로 하이브가 완연한 우세를 보이게 됐다”면서도 “카카오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의 투자금 유치로 현금 여력이 충분한 만큼, 결국 카카오의 공개 매수 의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하이브의 수장인 방시혁 의장은 이날 법원 결정 전 공개된 미국 CNN 인터뷰에서 SM 인수 이유에 대해 “K팝 성장 둔화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출 지표나 스트리밍 성장률을 보면 K팝 장르 성장률 둔화가 명확히 보인다”며 “그 관점에서 SM엔터 인수에 적극 뛰어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하이브의 SM 인수는 적대적 M&A”라는 SM 현 경영진과 직원들의 주장에 대해 “저흰 적법한 절차로 대주주(이수만) 지분을 인수했다”고 말했다.

이날 이 전 총괄과 하이브 측은 “법원이 정당한 판단을 내렸다”며 환영했다. 반면 SM과 카카오 측은 별도의 입장 없이 “내부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카카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투자 업계 관계자는 “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카카오 측의 ‘SM 지분 확보’ 의지는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안다”며 “경영권에 대한 욕심보다는, 하이브의 시장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차원”이라고 했다.